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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Apr 24. 2024

파리에서(2)

튈르리 공원, 그리고 폴 고갱

파리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 비가 오는 날도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오르세 미술관을 가기로 한 날. 숙소를 나서 트램을 타러 가는데 이게 웬일, 해는 쨍쨍, 바람은 선선했다. 트램을 타고 내리자 부서지는 햇빛에 오늘 하루종일 걸어어도 좋겠다 싶었다. 콩코르드 광장에 섰다. 커다란 나무들 위로 조그맣게 에펠탑이 보였다.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림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려고 잰걸음으로 커다란 나무사이를 지났다. 나무 사이로 해가 반짝였다.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이 많은 곳을 얼마 만에 거닐어보나.?’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꼭 가봐야지 했던 튈르리 정원이 보였다. 꽃과 나무, 그리고 정원 곳곳에 조각상들이 보였다. 공원과 조각상이라니... 사람들은 정원 여기저기에 눕거나 초록 의자에 앉아있었다.

<튈르리 정원> 또 간다해도 하루 종일 머물고 싶은 곳.



저 멀리 콩코르드 광장이 보였다. 한 시절, 저 광장에서는 누군가의 목이 베어지기도 했지. 광장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보면 에투알 개선문이 나온다. 누워서 개선문을 통과했다는 나폴레옹. 그 굴곡진 세월을 떠올려보았다. 그에 반에 내가 걷고 있던 튈르리 정원은 너무 아름답고 빛나는 곳이었다. ‘잠시 앉았다 갈까?’ 사람들처럼 나도 초록의자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 갈 오르세 미술관, 내일 갈 루브르박물관이 보였다. 실내공간으로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제 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도 이렇게 생생한 나무와 꽃들보단 못한 거지.’ 하면서 한 시간여를 튈르리 정원에 앉아있었다. 간신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또 오겠노라 하고 튈르리 정원에게 마음을 보내며 오르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게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연간회원권이 있어 줄도 서지 않고 미술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원에서 보던 조각들과 또 다른 조각들이 제일 처음 나를 반겨주었다. ‘오늘 나는 어떤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될까?’ 생각하며 조각들 사이를 지나 그림을 보러 갔다. 굳이 미술관 투어를 하지 않아도 요즘은 휴대폰만 있으면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가 있다. 미리 다운로드해놓은 오디오를 들으며 천천히 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네의 그림들을 지나며 마네의 성격에 대하여 유심히 들었다.


여러 그림들이 많았지만 오르세에서 특별히 내게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폴 고갱이었다. 여러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있었고, 모네의 수련 앞에서도 멈춰서 보았다. 고흐의 그림들 앞에서는 그의 노랑 색채 표현과 붓터치를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물감을 눌러내듯 터치한 부분들을 보며 고흐 그림은 꼭 와서 봐야겠구나 싶었다. 사실 고흐의 그림은 인터넷이나 책으로 하도 많이 봐서 그림 자체에 대한 감동은 크지 않았다.

그러다 폴 고갱의 그림만 모아 둔 전시관에서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고갱의 그림은 그 색채 자체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주황빛, 또 검은 빛 시냇물에 검은 피부 여성들..

<백마> 폴 고갱



 도시의 삶에 진절머리가 난 고갱은 타히티 섬에 머무르며 만난 사람들, 풍경들을 그림에 담아냈다.

모네의 그림들은 꽃과 나무와 물결을 은은하게 담아낸 반면 고갱은 짙고 무거운 색감을 이용해 자연을 표현했다. 그 시절 화가들은 자연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그렸다. 같은 그림이라도 느낌이 다르다. 고갱과 그의 절친 고흐가 그린 <아를의 지누부인>만 봐도 동일 인물을 그린 두 그림의 느낌이 너무도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림을 통해 그 사람의 성품을 알게 되기도 한다.


런던에서 사 온 고갱의 그림책을 펼쳐본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없는(보스턴 미술관 소장), 그의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8)라는 그림을 책을 통해 보았다.

죽음을 선택하기로 한 폴 고갱이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 죽기 전 위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던 그가 밤낮없이 그려낸 그림. 타히티 섬에 머무는 동안 만난 원시성, 검은 피부의 여성, 야생의 자연을 그려냈다. 그 그림을 그리며 읊어댄 성경 구절이 그림의 제목이 되었다고.

생명의 근원, 자아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그림.

예술과 철학은 그렇게 맞닿아있나 싶었다.

삶의 예술, 삶의 철학, 어떤 때는 텍스트로 꽉 채워진 성경보다 더 깊이 와닿는 그림들이 있다. 내게 고갱의 이 그림이 그렇다. 그가 중얼대었다는 성경구절은 그림이 되어 내게로 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_폴 고갱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와 다시 튈르리 정원을 걸었다. 등을 돌리니 센 강이 보인다. 해 질 녘의 센 강. 건물 속 그림들과 화가들에 심취해 있다 탁 트인 자연을 보니 또 다른 미술관 입구로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 보자!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미술관으로! 걷고 또 걸으며 해가 지는 센강을 마음 깊이 담았다.

센강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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