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유로짜리 예술을 사 온 날
런던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를 온전히 서점 투어(?)에 할애했다. 유명하다는 서점 두 곳을 다녀왔다.
전철을 타고 메릴본 거리로 갔다.
인터넷으로 눈여겨보던 'daunt books'에 도착.
서점 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 그리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책을 장르별로 구분하지 않고 나라별로 구분해 놓았다. 애초에 책을 구매하려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구경하는 마음이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최근에 다녀온 인도 코너에서 알지도 못하는 글과 그림이 있는 책을 빼서 보고, 지금 머무르고 있는 런던은 어떤 곳일까 싶어 또 한 권 끄집어내어 보고... 책 구경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을 구경한 기분이었다.
잘 정돈된 책들은 굳이 사지 않아도 그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군가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고 했다. 다운트 북스는 그 말이 꼭 들어맞는 공간이었다.
책방에서 빠져나와 어디로 가볼까 하다가 메릴본 거리를 거닐었다. 꽃집, 카페, 식당, 작은 식료품가게들이 즐비했다.
걷다가 ‘저긴 뭘까?’ 싶은 곳이 있었다.
‘oxfam'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였다. 재미있는 공간일 것 같아 들어간 그곳에서 다운트 북스에 진열된 책들보다 훨씬 값진 물건들을 만나게 되었다.
옥스팜은 영국의 한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가게인데 입던 옷부터 보던 책들까지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의 모태가 된 것이 옥스팜이라고... 가난과 빈곤을 퇴치하고자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기업 옥스팜.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경주의 ’숲을‘ 동지들이 생각났다. 작은 공간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 숲을’ 식구들! 또 공간 한쪽 편에 보이는 인도에서 온 수공예품들도 반가웠다.
자리를 옮겨 도서 코너에 가니 그냥 봐도 몇 년에서 몇십 년은 지났을 법한 책들이 보였다.
책을 사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몇 권 샀다. 책 가격은 평균 한 권에 2유로 정도.
특히 폴 고갱의 그림책이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는 구경을 마치고 다시 전철을 타고 노팅힐로 갔다. 주구장창 즐겨보던 영화 ’노팅힐‘이 생각나서 간 ’노팅힐 북샵‘은 그저 작은 책방일 뿐이었다. 영화의 내용을 모르고 갔다면 더 그러했으리라...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노팅힐의 낭만은 없었지만 잠시 계산대 뒤 좁은 책장 사이로 들어가니 무슨 이유인지 영화 속 책도둑이 떠올렸다. 책을 훔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싶었다.
걷고 구경하느라 점심때가 지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꼬르륵 소리에 근처 샐러드 가게에 들렀다.
장난기 가득한 남자 사장님이 여러 나라 언어로 나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아마도 내가 동양인이라 그랬겠지? 나는 웃으며 후무스랩과 스무디 한 잔을 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식사하고 싶지 않아서 들어간 가게는 조용해서 만족스러웠다. 또 대부분이 메뉴들이 비건 메뉴라 마음이 편안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고갱의 그림책을 펼쳤다. 2유로짜리 미술관을 사 온 기분이 들었다. 파리에서 만나볼 인상주의 화가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글쓰기에 대해 떠올렸다. 늘 마음 한켠에서 ”글이라는 틀 안에 갇히지 말아야 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끔 이렇게 유럽에 나오면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위로를 얻곤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림 예술. 곧 만날 황홀을 미리 앞당겨 느껴본다.
후무스랩을 씹어 먹으며 책방을 거닐던 날을 오래 맘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곧 파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