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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08. 2024

파리에서(3)

두고 온 것, 가져온 것.

파리에 다녀온 지 3주나 지났다.

내게 남은 건 무엇일까 떠올려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의 명소들은 떠오르지 않고 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라곤 센강과 나무, 튈르리 정원의 꽃과 새들,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들과 그때의 햇살...그리고 비온 뒤의 무지개.

내게 남은 것은 그런 것들 뿐이다. 사실 아이들과 동행한 파리는 어느 한 곳에(특히 루브르 박물관 같은 곳) 머물러 오래도록 무언가를 감상할 겨를이 없다. 다른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어린이들과의 해외여행은 순간순간 일촉즉발의 사태가 많고, 나 또한 그러했다.

거의 반은 포기상태로 그냥 거닐었던 것이 오히려 파리를 더 그립게 할 것 같다. 파리에 머물며 쓴 글 한편은 생태환경 잡지 한쪽에 실리게 됐다. 이게 다 파리 덕이다. 아니 파리의 강과 나무, 꽃과 새들 덕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딱딱한 건물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다.

내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난 여행 사진들을 들추어보며 생각해 본다.

초록을 걷는 둘째.


로마, 바르셀로나, 인도 오로빌.. 런던을 거쳐 파리를 다녀온 지금. 내게 여행이란 그냥 일상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여행 갈 채비를 하며 기대되는 마음이 있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그렇게 편안한 거다.

이번 파리는 더욱 그랬는데, 아이들이 늦잠을 자도 좀 늦게 나가지 뭐.. 하며 마음을 비운채 하루를 지냈던 것 같다. 마침 해가 저녁 8시가 넘어야 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쫓기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아부다비에서 처럼 파리에서도 각자가 원하는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었다. 근처 마트에서 사 온 과일과 야채, 집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남은 음식은 배낭에 넣어가 길거리를 걷다 배가 고프면 꺼내어 먹기도 했다. 아이들은 파리에 다녀온 후 그림을 그려댔다. 런던에서의 일상 중 기억에 남는 공원산책을 그림으로 그리는 막내를 보며 아이들도 나처럼 그저 여행이 일상으로 연결되어 가고 있나 싶었다.

늘 먹던 것을 먹는다. 현미밥과 사과.


센강을 넋 놓고 보던 날이 떠오른다. 해 질 녘의 센강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루브르에서 에펠탑까지 걷고 또 걸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사실은 센강을 더 오래 보고 싶어 아주 천천히 걸었다.

강변을 둘러싼 키 큰 가로수와 센강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강아래 유람선, 석양을 보며 조깅을 하는 사람들. 아직도 눈에 선한 장면들이다.

아름다운 센강 풍경



각자 저마다 담아 오는 여행의 풍경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 파리는 걸으며 만난 자연의 모습들로 가득 차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았어도, 2024년 봄의 파리는 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곳이었다.

튈르리 정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타격감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내 경우, 특별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된다면'하고 생각하면 그곳이 어디든 내게는 더없이 편안한 느낌의 여행지가 되어주었다.

런던도, 파리도 그랬다. 에펠탑 근처, 샹젤리제 거리에는 고개를 돌렸다 하면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새삼 언어장벽이 무색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대다수의 외국인들이 눈빛과 몸짓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비언어적 표현이 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 일러주는 루트대로, 또는 유명한 관광명소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그곳, 그 땅이 주는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강이 흐르는 방향대로 걸어보는 것, 새가 노래하는 곳을 찾아가 머물러 보는 것.

일상으로 돌아와도 늘 있는 그것에 집중해 보는 여행.

그나저나, 파리에 두고 온 것이 기억났다. 센강에 두고 온 마음... 다음 만날 땐 꼭 어두운 밤 센강을 거닐겠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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