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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15. 2024

나만의 여행법(1)

박물관, 그리고 시간 여행

오랜만에 루브르 아부다비에 왔다.

편한 바지에 슬리퍼차림, 책 한 권을 가지고…

그동안 나는 휴대폰을 좀 멈추고 싶을 때나 책 읽기를 쉴 때 박물관을 찾곤 했다.

아부다비에 루브르 박물관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올 때마다 다른 장면을 보게 된다.

어떤 날은 시대별 흐름을 보고, 어떤 날은 회화 중심, 어떤 날은 조각, 또 어떤 날엔 에미레티 영화를 본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그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유심히 보는 포인트가 다름을 느끼게 된다.


한동안 여기 아부다비 생활이 뿌연 안개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랬다. 타지에 내던져진 것 같아 막연함이 있었고, 날이 너무 뜨겁고 습해서 실제로 눈앞이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그때에 첫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여행을 했었다.

구석기시대의 돌도끼를 지나 상형문자가 새겨진 돌들을 거쳐 현대 미술의 로마자 흘림체를 구현한 작품까지… 박물관 전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 들었다.


조각보다는 미술 작품에 심취했을 때도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눈에 들어올 무렵 매일의 내 생활도 뭔가 허공에 날아다니는 연무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왜 그런지 오늘은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두 점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때 그의 뮤즈였던 카미유 클로델이 떠올랐다. 그녀는 열렬하고도 아픈 사랑을 했다. 예술가들의 삶은 때로 너무 치명적이게 아프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예술이란 세계는 광기로 점철된 세계인가 싶기도 하다.

이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루브르 아부다비와 나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 자리를 만들고 싶다.

Monument of Victor Hugo  /  Auguste Rodin (Paris, 1840-Meudon, 1917)




시간은 그렇게 흘러 뜨거운 날이 지나고 조금 선선해질 무렵부터 나는 다섯 개의 나라를 다녀왔다.

로마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 인도, 런던, 파리.

지금 생각해 보면 늘 걷고 걸었던 여행이다.

특별한 것 같으나 딱히 특별한 것 없는 여행이었다.

인물 중심의 기억들은 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와 길거리 예술가들, 인도의 스리오로빈도와 마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파리의 반 고흐, 그리고 나폴레옹.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찾은 가치들.

모양은 다르지만 더 높은 가치를 추구했던 사람들.

눈앞의 문제 하나에 절절매는 우리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더 높은 가치로 향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여행 중,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간 날,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등 떠밀려 나왔던 기억이 난다.

런던에서 대영박물관에서도 그랬다.

박물관이 대체 뭐가 좋으냐며 화를 내던 아이들.

이 아이들도 이다음에 크면 나처럼 시간여행을 하게 될까?

자신들의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겠지?


나는 이제 삶의 중반쯤 온 것 같다.

시간 여행, 세상 여행을 하다 보니 자주 진지해진다. 하지만 박물관은 재미가 없다며 짜증 내는 아이들처럼 조금 더 순수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진지해지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진중하되 재미있게!


루브르 아부다비 건물 밖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피부색이 다른, 언어도 다른 시간 여행자들이 내 주변을 서성대고 있다. 이들은 어떤 여행을 꿈꿀까?


내가 여행하는 방식, 박물관 시간 여행!

잠시 정신 차리고, 이제 본업인 엄마로 돌아갈 시간이다. 마치 내가 신데렐라라도 된 것 같다. 슬리퍼 잘 주워신고 집으로 가야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 한 루브르 아부다비의 돔, 바다와 햇빛, 벽면을 활용, 빛의 움직임을 잘 표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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