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을 긋고 산다는 것‘
프라하에 숙소를 두고 독일 드레스덴으로 가는 날. 아침 일찍 작은 봉고 버스를 탔다.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열명 남짓의 사람들 속에 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맨 뒷자리로 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버스의 맨 뒷칸에 타게 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인들의 목소리... 아이들의 소리까지 보태어져 아침 일찍부터 북적거리는 버스 안.
두꺼운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외투만 벗었을 뿐인데 오랜 짐을 벗은 것 마냥 홀가분했다. 겨울 옷 입을 일이 전혀 없던 나는 겨울 여행지에서 외투가 너무나도 짐스러웠다. 두꺼운 외투 그위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은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온몸을 무겁게 했다.
버스를 타고 2시간이면 독일로 갈 수 있다니. 집에서 티브이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시청하다 뿅 하고 순간 이동해 그곳으로 간다면 어떨까 하던 때가 떠올랐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 앞자리에 두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 커다란 태블릿을 켜 놓은 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태블릿을 보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말 한마디가 없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두 사람은 농인 같았다. 눈빛과 수어로 대화를 하고, 가이드가 하는 말은 태블릿이 대신 글로 변환해 주고 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는 두 사람... 큰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사람은 눈빛과 몸짓으로 아주 격렬한 대화중인 것처럼 보였다. 순간 저 두 사람, 다툴 때는 어떻게 다툴까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와 내 의견이 달라 답답할 때 큰소리를 내 말하곤 한다. 상대가 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없다면 어떤 형태로 다투게 될까 싶었다. 새삼 말이 갖는 한계, 소리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때로 방해가 되는 때가 많다 싶었다. 연일 이어지는 대통령 탄핵으로의 외침들이, 국회의 싸움현장이, 우리 삶 속 다툼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밖으로 향하는 부정의 에너지를 말로 다 내뿜어야 할까? 더 깊이 내 안에 머물다 보면 저 두 부부처럼 눈빛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버스는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다. 아직 오전인데 삽시간에 프라하에서 드레스덴 가까이에 와 있었다.
“이제 국경을 넘어갑니다.” 가이드의 외침이 무색하게 독일로 넘어가는 국경은 그저 조그만 검문소만 하나 있을 뿐 그 어떤 특별함도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가 떠오른다. 네 땅 내 땅을 구분 지어 구슬을 굴려 엄지와 중지를 컴퍼스 삼아서 내 구역을 넓혀가는 놀이...
오래전 각 나라들이 서로를 침략하고 침략당하며 그어놓은 그 선. 선을 넘지 말자는 일종의 약속. 언어를 달리하고 그 나라만의 고유한 문화가 생겼다. 다른 나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내 국적을 증명하는 종이 서류들이 필요해졌다. 내가 사는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소식을 들을 때면 새삼 국경이라는 것이 생긴 이후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며 우리는 끊임없이 싸우고 아파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드레스 덴에 내려 폐허 같던 작센지구를 걸었다. 국가가 주는 안정감은 참 작다. 오히려 국가 간의 전쟁, 폭력이 오랜 트라우마로 남아 더 깊은 국경의 선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긋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었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너와 나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일이다. 경계를 두어 조금 더 멀찍이 거리를 두는 행위이다. 나는 무엇과 선을 긋고 살고 있을까?
드레스덴 작센에 머물다 돌아오는 길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프라하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어두운 밤 조용히 다시 국경을 넘어왔다. 프라하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며 내 앞의 두 부부를 다시 보았다. 어깨를 툭툭 치며 수어를 하는 두 사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선이 있을까? 선이 있기라도 할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넘어갈까? 말을 할 수 없는 그들에겐 경계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프라하에 며칠 머물다 비엔나로 가는 날.
기차로 이동했다. 무거운 짐들을 기차에 싣고 자리에 앉으니 또 새삼 짐 없이 살아가는 게 참 편하겠다 싶었다. 내 삶에 덕지덕지 붙은 여러 것들이 짐스러운 때가 많다.
버스로 독일 국경을 넘어갔던 날을 뒤로하고 , 기차로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야 도착한다고 했다.
점심 다되어 출발한 기차는 해 질 녘에야 비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앉은 가족석 그 자리는 커다란 창문이 마치 액자처럼 보였는데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그림들이 펼쳐졌다. 푸른 나무를 지나 강이 나오고, 들판의 소들이 보이다 빼곡한 시골집들도 보였다. 그러다 눈이 내리기도 하고 안개가 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했다. 우리가 이동 중인건지 바깥이 변하는 중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삶을 살아간다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엔나에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차창밖 풍경은 점점 황홀해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기도 한 해 질 녘 풍경을 비엔나행 기차에서 바라보게 될 줄이야!
넓은 들판 위 펼쳐진 석양 그 앞에 드리워진 겨울나무들. 스케치 노트와 연필을 꺼내었다. 사진을 찍기보다 그려야겠다 싶었다. 겨울나무의 가지들을 그리다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비엔나행 기차에서 사랑을 싹틔웠던 젊은 날의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가 떠올랐다. 오래전 그 영화를 보며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했었는데… 나이가 들어 두 아이를 데리고 비엔나행 기차를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림을 그리다 큰 딸에게 말했다. “있잖아. 은서야. 저렇게 예쁜 석양을 보고도 감탄할 줄 모르는 남자는 만나지 말아야 돼. 알겠지?” 은서는 씩 웃었다. 웃는 은서에게 뒷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맘속으로만 되뇌었다. “자연을 보고 감탄할 줄 모르는 남자는 말이야.. 어쩌면 마음에 자기만의 선을 긋고 사는 사람일지도 몰라. 이유야 어찌 됐건 그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는 법을 모를지도 몰라.”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