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람 - 거리의 아이들
금요일 새벽 네시에 일어났다. 동이 트기도 전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짧은 일정으로 근처 이집트에 다녀오기로 한 날.
스핑크스 국제공항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작고 단출한 공항. 남인도 첸나이 공항이 떠올랐다.
숙소에서 차를 보내주어 기자 지역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30분쯤 달렸을까? 조금씩 더 사막 가까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숙소가 가까워오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또다시 남인도를 떠올리게 했다.
도로 위 몰려다니는 사람들, 달리는 차 옆의 낙타와 말. 경찰의 수신호가 무색하게 도로는 어지럽기만 했다.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 속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아부다비에서 늘 보던 아랍어 간판들도 익숙했다.
숙소 입구에 내리니 바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보였다. 눈앞에 떡하니 펼쳐진 저 풍경이 정말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인가 싶었다.
주말이라 피라미드를 구경하겠다고 온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기자 지역. 그곳에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짐을 풀어놓고 루프탑에 올라 멀리 보이는 스핑크스에게 인사를 하고는 물끄러미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루프탑에 앉아 해를 쬐며 따뜻한 차도 한잔 하며 한숨 돌렸다.
아이들은 잠시 풍경을 살피더니 이내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이게 느껴진 걸까? 아니면 티브이를 보듯 풍경처럼만 보였을까? 나 또한 그랬으니... 아이들 또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그저 한 장면으로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재작년부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든 생각 하나. 그 나라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번 이집트 여행에서 현지인 가이드를 만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그것도 한국말을 잘하는 이집트인이라니!
이곳의 풍경도 풍경이지만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 동그란 눈에 두터운 입술...
숙소에서 나와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여러 아이들을 만났다. 이집트가 요즘 어떠한지 잘 몰랐던 나는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를 보고 놀랐다. 아이들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신발은 신지 안은 채로 세수를 한지도 꽤 되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는 길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간식, 기념품, 전통지갑 등을 팔고 있었다. 한 아이는 지갑을 사달라고 달려와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동그란 눈을 뜨고 알 수 없는 아랍어로 종알종알 내게 뭔가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내가 웃으니 아이도 웃었다. 짐작으로만 알 수 있는 아이의 말을 듣고 다른 길로 들어서니 또 다른 아이가 있다. 자동차 경적 소리, 낙타와 말이 지나는 소리,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 도로를 가득 메운 소리들로 지칠 때쯤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한 우리는 피자헛 건물에 들어갔다. 별로 당기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밥을 시켰다.
식사 주문을 해놓고 식당 유리문으로 가서 바깥을 바라보다 조그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동네 어린아이. 신발은 없고 얼굴에는 때가 잔뜩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아이와 마주 섰다. 나를 보고는 자기 배를 문지르는 시늉을 한다. 한 손으로는 손바닥을 벌려 무얼 달라고 한다.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큰 눈망울이 반달이 되어 씩 하고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누나에게 끌려가는 아이. 폐지를 줍고 있는 엄마와 더 어린 동생도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 주문한 밥이 나와 자리에 앉았다. 어쩐지 내가 시킨 밥은 삼키기가 힘들었다. 배고픈 아이를 뒤로하고 먹는 밥이 목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누가 저 아이와 나를 이토록 다른 삶을 살게 했나 싶었다. 이 나라뿐일까? 먹고사는 일에 허덕이는 삶들이 말이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먹는 소금에 절인 듯 짠 밥. 이럴 땐 한 끼를 때우는 느낌으로 꾸역꾸역 식사를 해낸다.
피라미드 안팎을 돌아보던 날.
이집트 인 모마 아저씨가 이집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고 했다. 문화의 차이를 극복했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유쾌하게 이집트 파라오들과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을 풀어내 주었다.
책이나 유튜브로도 이집트에 대한 정보들이 넘쳐나지만 현지인에게 듣는 이야기는, 그것도 한국말에 능통한 모마 아저씨의 말투로 듣는 이야기는 집중도가 최고였다. 큰딸 은서는 기념품 가게에서 산 수첩에 미라를 만드는 법, 피라미드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두고, 모마 아저씨의 이야기들을 메모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모마 아저씨의 동그란 눈, 두툼한 입술. 그의 말투. 아저씨를 따라 며칠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을 정도였다.
여행을 하며 그 나라 사람을 이렇게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의 눈. 나를 빤히 보며 미소 짓던 아이들. 맨발이 편해서 신발을 벗어던지는 둘째 은유와 달리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던 아이들. 배가 볼록 나올 때까지 간식을 챙겨 먹는 우리 아이들과 달리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이집트 아이들.
기자 지역 하천과 도롯가에는 쓰레기 더미가 즐비했다. 쓰레기를 뒤져 쓸만한 것을 골라내는 여성들도 보였다. 새삼 나의 여행이 사치스러워 보였다. 세계 곳곳의 불평등의 장면들이 마음에 남는 여행. 다 각자의 삶이 있다고 하기엔 너무도 대비되는 삶이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듯 선사시대에 인류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동물, 고릴라, 반딧불이, 해파리보다 딱히 더 두드러지지 않은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 일뿐이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제는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가 된, 오늘날 인간종은 자본과 과학에 힘입어 신이 되려는 건 아닐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영생과 환생, 순수한 신앙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내가 신이 되고, 돈이 신이 되는, 누군가가 굶주려도 나 하나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시대가 이 시대가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이집트에서 본 아이들의 눈에서. 살아 숨 쉬는 순수의 생명을 바라보며 겁이 났다. 우리는 돌아갈 수 있을까?
원래대로, 자연스러운 상태로, 모두가 하나였던 그때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