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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2)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삶

by 정현 Feb 26. 2025


모마 아저씨와 함께 사카라 피라미드에 간 날.

쿠푸왕 피라미드가 아닌 사카라로 갔다. 멤피스 박물관도 포기한 채 사카라에 다녀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모마 아저씨가 내 글을 본다면.. “모마! 사카라를 안내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모마짱!”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카라 피라미드는 2018년. 그러니까 가장 최근에 발견된 피라미드이다. 가장 최초의 피라미드인 계단식 피라미드가 발견되기도 했다.

나일강의 서편 서안이라 일컫는 사막에서 발견된. 영국의 학자들이 아닌 이집트인들이 발굴한 피라미드 이기도 하다.


일 년 중 가장 선선한 날씨에 찾은 이집트의 사막은 시원하기는 했으나 햇볕은 따가웠다.

드넓은 사막에 내리자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건 다름 아닌 낙타, 그리고 스카프를 팔던 상인들. 한쪽 팔에 색색의 스카프를 걸고 우리를 환영했다. 파라오의 얼굴이 그려진 스카프 하나를 2달러에 샀다. 대충 두르고 모마아저씨를 따라가는데 낙타 주인이 나에게 웃으며 다가와서는 스카프는 그렇게 메면 안 된다고 자기가 도와주겠단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손에 내 머리를 맡겼다. 터번 모양으로 스카프를 멋들어지게 둘러주던 할아버지는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돈을 달라는 거다. 아차. 이집트에서는 공짜가 없다 했었지. 나는 가진 돈이 없다고 했고, 웃음을 머금었던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아임 쏘리를 외치고 재빨리 모마 아저씨 뒤를 따라갔다.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스카프를 두르고.


계단식 피라미드 앞에 섰다. 고대 이집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초의 피라미드가 계단식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신에게, 하늘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한다 했다.

성서 속 바벨탑이 떠올랐다. 어리석은 인간은 스스로 높아지려 높이높이 바발탑을 쌓아 올렸다. 곧 바벨탑이 무너지고 같은 언어를 쓰며 하나였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이 쌓아 올린 하늘 계단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했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두고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왕의 무덤이라 하기에는 그 속에 묘실, 넓은 공간 등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지나 저 멀리 무너진 피라미드도 보였다. 무너져서 외관상으로는 흙더미 같던 그 피라미드.

오랜 세월 묻혀있던 피라미드를 세상밖에 드러낸 기술도 참 대단하지만 무너진 피라미드를 보고 있노라니 또 한 번 무너진 바벨탑을 떠올랐다.

계단식 피라미드, 그리고 낙타 주인.


사카라의 한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여 이마가 발등에 닿을 만큼 굽혀 들어간 그곳은 음습했다. 벽화들이 보였다. 작은 양각의 벽화들 속 이집트인, 동물들, 상형문자들을 보다가 한 안내자 곁의 벽에는 빛을 비추면 나타나는 음각의 커다란 벽화가 보였다. 빛이 사라지니 곧 그림이 사라지는 모습에 아이들도 신기해했다.


손으로 만지지 말라했지만 개구쟁이 아이들은 손으로 벽화를 쓰다듬었다. 몇천 년 전의 그림을 만져본 기분이 어땠을까?


작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눈부신 해를 뒤로 하고 돌기둥과 상형문자들로 가득 찬 벽을 지나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에 간 것처럼 펼쳐진 수많은 벽화들이 있었다.

그림일기 같았다. 농사짓던 모습, 창으로 물살이를 잡는 모습, 동물을 기르고 도축하는 모습 등 그 시대의 생활상을 담은 몇 편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벽화의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새끼를 낳는 하마. 그 뒤를 따라오는 악어. 입을 벌린 그 악어는 죽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삶을 그려 놓은 벽화였다.

누구나 태어나고, 또 죽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면서도 그 끝인 죽음을 끝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믿는 신이 주는 계명을 잘 지키며 살면 몸은 죽지만 영혼은 계속 살 수 있다고 여겼다. 높은 직위, 특히 파라오의 미라를 보면 더욱 그러함을 알 수 있는데 이제까지 발견된 파라오의 미라는 목관이나 석관에 그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조각해 두었다. 그래야 죽어도 자신의 영혼이 다시 몸을 찾아온다고 믿었다 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 영원이란 것에 관심이 없는 현대인들.

누군가는 장례식장이야 말로 삶을 되돌아보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했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들은 잠시 장례식장에 들러 인사를 하고 식사하며 수다를 떨고 다시 삶으로 돌아와 또 바쁘게 살아간다. 죽음은 저 멀리 있는 것 처럼...


수많은 벽화들을 바라보다 내가 딛고 선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은 왜 영원을 원했을까?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삶은 우울하기만 했을까?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 이쪽 서쪽 사막을 죽음의 땅이라 이름 붙히며 매일의 태양을 보면서 죽음을 떠올렸겠지? 그렇게 하루를 영원처럼 살았겠지?

새의 머리 모양 방향에 따라 읽을 수 있는 벽화.


나일강의 서쪽, 서안이라 불리는 죽음의 땅. 그곳에 수많은 피라미드들이 있다.

나일강 물줄기 그 곁은 밀농사를 지을 만큼 생명력 넘치는 땅이었고 그곳을 벗어난 사막은 메마른 모래만큼이나 황량한 곳이었다. 도굴당하고 파헤쳐진 무덤, 아직도 80퍼센트는 땅속에 묻혀있을 옛사람들.

이집트의 고고학자와 유골연구자들은 미라 하나가 발견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했다. 뼛조각을 만지며 몇천 년 전의 그 사람을 친구 대하듯 인사한다 했다. “앗살람 알라이쿰”(السلام عليكم-평화를 빌어요) 그러면 한때는 살아있는 몸이었던 미라가 대답하는 듯하다 했다. “슈크란”(شكرا لك-고마워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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