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비행기 안에서 동트는 걸 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레 공항에 내렸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몰디브의 한 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밟는 섬, 낯선 땅.
직원 몇 명이 나와 전통악기를 치며 우리를 맞아주었고, 한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굿모닝 인사를 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수영. 나는 잠을 못 잔 탓에 수영장 옆 의자에 기대 그대로 입을 벌린 채 잠이 들었다.
아침, 그리고 해 질 녘에 요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요가실까지 걸었다. 후텁지근했지만 한 시간 요가 수련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졌다.
내게 요가는 그저 일상에 잘 스며들어있는 수련. 밥을 먹듯 시간을 지켜 몸을 움직였다. 수련이 끝나고 나면 섬을 한 바퀴 돌았다. 각종 나무들로 뒤덮인 작은 섬을 돌며 도마뱀, 바다닭이라 불리는 새, 소라게도 만났다. 커다란 반얀트리 앞에 잠시 섰다가 또 한 바퀴. 늘 그렇듯 자연 속에 머물 때는 신발은 거추장스럽다. 머리 위로는 태양의 기운을, 발바닥으로는 땅의 기운을 흡수했다.
아침마다 흙길을 맨발로 걸었다. 반얀트리뿐만 아니라 야자수, 이름 모를 둥근 잎을 가진 나무, 색색의 꽃들을 만났다. 거친 사막 땅에서 온 나는 이 우거진 숲을 걷는 것이 가슴 벅찰 정도로 충만한 느낌이었다. 걷다가 자세를 낮춰 도마뱀의 종종걸음을 바라보고, 반얀트리의 공중부양한 뿌리가 될 가지들을 매만지기도 했다.
‘나무가 없다면...’하고 상상해 본다. 우리 사는 땅에 나무가 없다면.. 늘 곁에 있어 당연한 줄 알았던 이 나무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땅은 메마르고 사막화가 되겠지. 산소는 부족 해질 테고.. 비는 더 오지 않겠지.
봄소식과 함께 들려오는 대한민국 곳곳의 산불 소식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렇지만 눈앞에 펼쳐진 단면을 마주한 것일 뿐,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는 산불. 산불은 나무 때문이 아닌데.. 엄한 나무가 원인이라 생각하지 말자.
몰디브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을 두어 번 읽었다. 나무아래 걷다 펼쳐든 책 속에는 위대한 한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꿋꿋하게도 평생 나무를 심으며 살았다. 폐허가 된 땅에 도토리 열매를 심으며 떡갈나무 숲을 마음속에 그리며.. 끝끝내 자신의 상상 속 장면을 현실로 창조해 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죽어가는 땅, 생명이 없는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나무를 심고 또 심는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평생을 바쳐 나무를 심은 그곳은 시간이 흘러 숲이 되고 사람들이 모이고 다시 여러 생명이 섞여 호흡하는 장소가 되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저 나무를 심은 부피에.
어떤 마음으로 오랜 시간을 불평도 없이 나무만 심었을까?
그는 깊은 고독 속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했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라고는 나무를 심는 모습뿐.
얼마나 오랜 시간 그렇게 지냈는지,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던 부피에.
하지만 그의 행동 깊숙한 곳에는 신성이 깃들고 또 깃들었을 것이다.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연과, 신과 대화했을 것이다.
내면의 대지는 더욱더 굳건해져 전쟁 따위에 흔들리지도 않았으리라.
그를 두고 하느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표현한 작가.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지 않고서야 어찌 묵묵히 나무만 심을 수 있으랴. 무엇으로 전쟁의 흔적을 지울 수 있었으랴.
작아 보이는 일, 그러나 커다란 일을 해낸 한 사람. 우리가 힘주어 이야기하는 그 ‘위대한 평민’.
생명과 손 맞잡고 살자는 그의 다짐이 자연과 사람, 그 모두를 변화시켰다.
책 속에는 보리수가 부활의 상징으로 나온다.
또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자로의 부활도 언급된다.
오늘 아침 만난 커다란 반얀트리 앞에서 나는 생명, 재탄생, 재연결을 떠올린다.
남인도 오로빌에서도 반얀트리가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커다란 나무에서 뻗어 나온 많은 가지들.
그 가지들이 처져 땅으로 향하고. 누가 심지 않아도 땅에 뿌리를 내린다.
반얀트리의 가지와 뿌리처럼 생명은 그렇게 탄생, 성장, 소멸을 반복한다.
(스스로 새기는 말)
곧 식목일이다.
한 그루 나무를 심자. 내 삶터에, 그리고 내 맘속에..
작은 일이라 여기는 일상을 쌓고 또 쌓아가자. 늘 생명을 중심에 두자. 위대한 평민의 정신으로 살아가자.
우리 서로 공공의 선으로... 작지만 큰일을 해나가자.
내 마음에 이런 다짐들을 새겨본다.
나무야 나무야 깊이 뿌리내려라.
반얀트리 가지처럼 맘 속에 잔뿌리를 많이 많이 내려주렴.
그래서 더 굳건한 마음으로 흔들림 없는 우리가 되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