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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에서(2)

몰디브 동백

by 정현


3월 끝자락, 4월의 맞이를 쿠다 바타루 섬에서 하게 되었다. 몰디브의 천여 개 섬 가운데 말레와 가까운 작은 섬, 쿠다 바타루.

매일 아침 걸어서 섬 한 바퀴를 도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날은 새벽 요가를 마치고와 숙소 데크에 앉았는데 내 발등으로 오렌지빛 꽃송이가 툭하고 떨어졌다. 멀리서 보면 양귀비 같다가 자세히 보니 또 금화규 같기도 하고... 바람이 불자 같은 꽃송이가 툭하고 또 떨어졌다. 송이째 떨어지는 꽃이 동백을 떠올리게 했다. 제주에 있을 때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그 동백. 시들기도 전에 툭 떨어진 꽃송이는 땅에 얼굴을 묻은 채 시들어갔다. 동백동산 걷기를 참 좋아했는데... 제주 생각에 잠겼다. 4.3이 다가온단 사실이 마음 아팠다. 4.3 공원에서, 또 제주 공항에서 여행자가 아닌 제주시민의 마음으로 두 손 모았던 기억. 아픈 4월에 그렇게 떠오르는 4.3. 내 발에 떨어진 꽃송이를 ‘몰디브 동백’이라 부르기로 했다.

떨어진 꽃송이를 모았다.


한국의 지인에게서 큰 어른 두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나 큰일 앞에서 멀리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 담은 기도를 보내는 것뿐인가. 내 발아래 떨어진 몰디브 동백으로 추모의 마음을 전달했다.

동백이 땅에 떨어져 원래 자리인 흙으로 돌아가듯 생명이 지는 것은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 가는 걸음에 온마음 담아 기도를 올렸다. 마침 그날 요가수업에선 호흡수련을 했기에 나는 한 시간 내내 깊은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기도 손을 모으는 순간이 잦아졌다.


몸져누운 아버지가 떠올랐다.

몸 구석구석 다 상해버려 어찌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상황... 물도 삼키기 힘들고, 잠도 쉽게 잘 수없다고 했다. 섬에 있는 동안 식사 때마다 목이 메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맹렬하게 음식을 먹어댔다. 애써 일찍 잠들려고 노력했다.

새벽 요가 시간마다 몸이 흠뻑 젖도록 움직이며 아버지가 떠오를 땐 그냥 울며 수련했다.

수련생들 몰래 울었지만 마칠 때쯤 선생님은 마지막에 남은 내게 괜찮냐 물었다. 오늘도 남아서 개인수련을 할 건지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라고 대답하고는 남아서 홀로 수련을 했다. 아무도 없는 수련실은 소리 내 울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 아픈이름.


4월은 그렇게 아픈 달. 사순절을 지내며 찾은 섬. 그 섬에서 떠오른 죽은 자들, 목숨을 붙들고 있는 아버지. 그 와중에도 천진한 아이들은 바다 수영을 하고, 나무 아래를 뛰어다녔다. 이곳에서도 해는 매일 뜨고 지며, 가슴이 아파도 나는 먹고 자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늘 평화와 안정, 행복을 꿈꾸지만 삶 속에는 희(喜)와 비(悲)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게 된다.

괴롭다가도 또 기쁜 순간을 맞게 되고 그러다가 또 슬픔이 왈칵 솟구치는 그야말로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

그렇게 생명은 느리게, 빠르게 그렇지만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한국 친구들이 꽃놀이를 간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특히 봄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듯하다. 벚꽃에 일렁이는 사람들의 그 마음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겠지? 꽃이 피어나는 그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 못할 테지만 지는 꽃 또한 너무도 아름답다. 동백꽃 한 송이가 툭하고 떨어져 부서지고 흙에 묻혀 또다시 꽃 피워낼 어느 날을 떠올려본다. 눈에서 사라진단건 그 아름다움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그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임을 마음에 새긴다.

마음속 깊이 기억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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