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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행기를 마치며...

열린 가슴으로 산다는 것.

by 정현

작년 10월 조지아 여행을 시작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시즌2>의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브런치 북을 마무리하며 지난 여행을 떠올려본다.



-조지아와 아부다비 사막

뜨거운 여름의 나라 아부다비를 뒤로하고 캅카스 산맥의 아래 츠테판츠민다 마을에서 지낸 기록. 하늘 아래 높이 솟은 러시아로 넘어가는 산자락엔 은빛 눈가루들이 쌓여있고 내가 머문 마을의 통나무집 안은 보글보글 밥 끓는 훈기가 가득했던, 대비되는 두 온도를 눈으로 몸으로 느끼던 조지아여행이었다.

조지아. 스테판츠민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와 사막을 찾기도 했다. 그전에 경험한 사막은 경이와 감탄을 주었다면 다시 찾은 사막은 대지의 메마른 모래 위의 생명들을 바라보게 했다. 모래들 사이로 난 생명력 강한 식물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야생 낙타…. 은하수를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과 그들이 가져온 밝은 조명, 그 덕에(?) 보이지 않던 은하수.

사람들을 피해 사막 한적한 곳을 찾았지만 몰려드는 인파에 더 깊숙한 사막 중심으로 들어가고 싶던...

묵묵히 자기 갈길을 가는 야생 낙타의 뒷모습을 보며, 또 몸통을 낮추는 낙타의 무릎을 보며 성경 속 기도의 사람을 떠올리기도 했다. ‘낙타 무릎’이라는 직관적인 말을 눈앞에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홀로 가는 낙타.




-독일 드레스덴/체코 프라하/오스트리아 빈

드레스덴. 작센 주 그 폐허의 공간을 돌아보며, 인류가 입힌 상처를 떠올리며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떠올렸다.

드레스 덴에서 프라하로 돌아와 매일 걸었던 카를교, 그 위의 조각상들을 매일 마주했다. 낯선 곳을 걷는다는 것 만으로 수시로 찾아오는 우울감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울하면 걷고, 그래도 우울하면 다시 걸으라’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비엔나로 가서 하루 종일 몸살에 시달린 날도 있었다. 오랜만의 몸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하루 온종일 아프고서 아부다비로 돌아오니 한국의 비행기 사고 소식이 들렸다. 나는 아부다비에 무사히 내렸지만 누군가는 비행기 착륙과 함께 생명을 잃었다. 아이들과 나는 초를 켜고 두 손을 모았다. 여행 다녀온 후 아픈 마음을 한참 싸매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상처를 안고 있던, 드레스덴 작센 지구.


-경주 3주 식구들

경주 바닐라집 식구들이 찾아와 3주 식구라는 이름으로 먹고 자고 함께 놀았던 2월...

또 여행기 시즌 1에서 이야기 한 남인도 오로빌 3주 식구들.

경주 친구들과 3주간 함께 지낸 기억들은 새삼 가족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맘이 들게 했다.

식구가 되어간단 건 힘들고도 기쁜 일.

아부다비로 날아온 경주 식구들.




-이집트

아부다비에서 가까운 이집트에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집트 로컬 가이드 모마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는 그의 찰진 입담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여행. 사카라 무덤의 비밀, 벽화를 손으로 더듬으며 다녔던 기억. 쿠푸왕의 무덤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기묘한 모양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기억.

삶과 죽음을 같은 선에 놓고 보는 연습을 한 여행이었다. 길거리 구걸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누가 우리를 이토록 다른 삶으로 이끌었나 하는 생각에 맘이 저려오기도 했다.

이집트 사카라 무덤.




-몰디브 쿠다 바타루 섬

4월. 아픈 달에 몰디브의 작은 섬 쿠다 바타루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아버지의 암투병이라는 무거운 소식을 가슴에 안고 그곳에 갔다. 동이 트면 일어나 요가 수련을 하고 숲길을 걸으며 나무와 교감했다. 아버지가 떠오르면 눈물을 흘리고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과 식사를 하며 또 하루를 힘차게 지냈다. 4.3과 세월호를 떠올렸고 사순절을 보내며 죽음 너머의 세계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묵묵히 나무를 심었던 주인공을 보며 인생의 절반을 산 나는 이제 무엇으로 내 주변을 이롭게 할까 생각했다. 반얀트리 곁을 매일 맴돌았다. 가지가 뿌리가 되어 다시 땅으로 향하는 그 나무는 끊임없이 생명의 근본인 땅을 향하고 있었다.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릴 일이 없으리라. 반얀트리의 뿌리들을 만지며 나도 그와 같이 살자고 다짐했다.

몰디브. 쿠다 바타루 섬에서.



두 번째 여행기를 마무리하며…

어느 곳을 가던 삶과 죽음, 생명과 연결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간 여행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걸으며 만난 사람들, 동물과 나무들, 죽은 자와 산자, 그 흔적들, 아부다비로 찾아와 준 식구들. 그곳이 어느 곳이든 생명과 연결되어 지낸 경험은 우리의 인생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 지금, 여기. 현재를 열린 가슴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

뭇 생명들과의 연결 가운데 묵묵히 평화와 사랑의 마음을 흘려보내라는 것. 이번 시즌의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의 교감, 연결.


무언가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다음 여행에서는 무엇을 보게 될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바라보는 여행이 되겠지.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하고 아쉬울 때가 많지만 때로는 비언어적인 표현과 느낌이 더 강렬할 때가 있다.

내게만 보이는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해야겠다.

(곧 시즌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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