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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Feb 28. 2022

송충이 잡는 날

   그날은 송충이 잡는 날!

  민둥산에 애껏 심은 나무가 죽는다고 온 나라가 난리였다. TV 방송에서부터 교장 선생님 훈화까지, 우리는 기어코 송충이를 박멸해야 한다. 

  6.25 전쟁으로 민둥산이 많아서 국가의 주요 사업 하나가 나무 심는 거였다. 그런데 1970년대는 얼마나 송충이가 많았던지, 무지막지하게 솔잎을 갈아먹는 바람에 소나무가 말라죽기도 했다. 그래서 국가가 제정한 방제 기간에 맞추어, 우리의 임무는 송충이들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송충이를 잡으려면 적어도 미리 집에서 깡통을 준비해가야 했다. 나는 빈 깡통에 못을 박아 구멍을 뚫었다. 구멍 높이가 되도록 같게 해야 애를 덜 먹는다. 높이가 달라 기울어지면 석유가 쏟아질 수 있다. 석유는 송충이의 몸을 녹여 쭈그려뜨리는 살충제 역할을 했다. 깡통의 크기도 적당해야 한다. 너무 크면 석유가 많이 들어가서 다루기가 힘들고 너무 작으면 송충이 놈이 기어올라 줄까지 타고 오르니까 무섭다. 그놈들도 필사적이어서 전우의 시체를 타고 넘어, 어떻게든 살려고 위로 기어오른다. 나는 나름 깡통을 고르고 골라 애를 쓰며 못으로 구멍을 뚫었다.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운동장에 모였다. 반별 2열 종대로 맞춰 서서 선생님의 뒤를 따라 함께 학교 밖 야산으로 향했다. 5월이라 햇볕은 따사롭고 놀기 좋을 만큼 바람도 시원했다. 붉게 벗겨진 산 등을 밟으며 야산을 올랐다. 도시락 없어도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가니 우리 반이 해결해야 할 야산이 나왔다. 선생님이 부어 주시는 석유를 깡통 안에 담아 넣고 송충이잡이 준비를 했다. 선생님 말씀에 따라 나와 친구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한 사람당 50마리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각자 잡아야 할 할당량이 있었다. 나와 순열이는 한패가 되어 소나무 앞에 섰다. 


  송충이는 솔나방의 애벌레다. 여름철에 알에서 깨어나, 작은 애벌레가 되면서 솔잎을 갉아 먹기 시작한다. 이때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월동 후 봄이 되면 우람해져서 송충이 잡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러니까 8월쯤 성충이 되어 알을 낳기 전에, 박멸해야만 했다. 


  딱 얼굴을 들어 올려 소나무를 쳐다보니, 나무마다 크고 작은 송충이들이 득실대고 있었다. 게다가 벌써 탈피를 몇 번 했는지 대부분 살이 올라 통통했다. 손가락만 하게 굵은 놈들이 아무 걱정 없이 솔잎 갉아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더러는 마실가는지,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송충이의 머리는 흰색과 검정이 마디마디 섞였는데 온몸에 털들이 서 있다. 굼실거리는 것이 내 몸 어딘 가를 기어 다닐 것 같아 근질거리고 소름이 끼쳤다. 


  그래도 맡은 임무가 있는지라, 나는 소나무로 다가갔다. 눈이 크고 겁이 많은 순열이는 감히 송충이가 있는 나무로 다가오지 못하고 대신 끈으로 길게 늘어뜨린, 석유가 든 깡통을 간신히 들고 서 있었다. 나는 한 놈을 잡아 깡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송충이가 몸을 비틀어대며 죽어갔다. 나는 다시 나무로 돌아섰다. 잡아야 할 송충이가 너무 많았다. 

그다음엔 덩치 큰 송충이를 잡을 차례다. 나무젓가락으로 가지에서 송충이를 떼어 내려 애썼다. 그런데 요놈도 만만찮다. 배 쪽으로 몸을 오므라뜨리며 안 떨어지려 한다. 매끈한 둥치면 떼기 쉽지만 꺼칠한 소나무 가지에 감아쥔 놈은 쉽사리 떼어지질 않는다. 송충이를 잡은 손에 녀석이 온 힘을 다해 버티려는 것이 느껴진다. 징글징글하다. 그래도 애써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넣는다. 크게 온몸을 뒤틀며 석유를 헤집는다. 그놈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속이 메슥거렸다.


  그렇게 송충이 잡기를 거듭하는데 갑자기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장난기 많은 창훈이가 나무 작대기를 들고 송충이가 있는 곳을 막 내려쳤나 보았다. 한 놈이 날아가서 어쩌다 순열의 목 쪽에 송충이가 떨어진 것이다. 순열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내가 급히 달려들어 보니 송충이는 떨어지고 없는데 송충이가 붙었던 자리인지 순열의 목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너 일루와!”     


  빨리빨리 송충이를 잡으려고 작대기로 나무를 아무렇게나 내려치던 창훈이는 팔굽혀펴기 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을 끝낸 창훈이는 누구보다 빨리 배분된 송충이를 수를 채웠다. 그날의 송충이 잡기 전투는 쉽지만은 않은 싸움이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여름이 왔다. 순열이와 소나무 아래서 놀면서 우리는 소나무 이파리를 따고 있었다. 솔잎의 끝에 붙어있는 갈색 껍질을 벗겨낸 후 솔잎을 여러 개 묶었다 풀었다 하며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붕붕거리는 갈색 나방이 나타났다. 머리에 붙은 더듬이며 몸뚱이가 부드럽게 둥글다. 귀엽다. 몸 언저리에 갈색 줄무늬가 보였다. 솔나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잡지 못한 저놈이 용케도 나방이 되었구나! 나방은 통통한 몸을 흔들며 왔다 갔다 하더니 멀리 사라져갔다.


  솔나방은 송충이처럼 징그럽지 않다. 송충이의 어른인데도 말이다. 솔나방은 송충이 같은 뻣뻣한 털도 꿈틀거리는 움직임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기가 어른보다 끔찍하게 징그럽다니! 


  그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애벌레인 송충이들을 말살하려고 얼마나 무진 애를 썼던가! 그런 봄의 행사는 1970년대에 해마다 벌어지는 연례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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