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잘 있지?
"엄마. 외할아버지 보고 싶어."
저녁을 먹다가 작은 아이가 대뜸 말했다. 얼마 전 가족 간의 호칭을 알려주는 책을 읽은 이후로 아이는 질문이 많아졌다. <장인어른>이란 호칭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응, 아빠가 외할아버지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 거야."
"아~ 그럼 아빠는 장인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겠네?"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햇수로 19년이 지났다. 내게 아빠가 있었던 적이 있었나? 이젠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아빠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흐릿하다. 사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좋았던 기억도, 싫었던 기억도 남아있는 게 없다. 그저 아빠는 말이 없었고, 술을 좋아했고, 소리 없이 잘 웃었다는 것 밖에.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기억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실이 참 서글프다.
철없던 어린 시절 아빠를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었다. 가난한 우리 집이 싫었고, 공부하지 말고 공장에 취직하라는 부모님이 미웠다. 자주 다투시는 부모님이 싫었다. 우리 집은 빛이 잘 들지 않는 반지하 방 같았다. 생기가 없었다. 어린 나는 빨리 어른이 돼서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상상했다. 어른이 된 나의 모습, 내가 결혼해서 이룬 가정의 모습, 내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 아빠의 모습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런 상상만이 그 시절 나를 구원해 주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심장이 몹시 소란스럽게 뛰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가는 길은 유난히도 멀었고 그날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 예뻤다. 두툼하고 큰 아빠의 손을 그때 처음 잡아봤다. 이미 차가워진 손을 정성스레 어루만졌다. 아빠의 손이 내 두 손안에 가득 찼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9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난 왜 한 번도 아빠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을까. 아빠의 삶을 외면하기만 했을까. 살아계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이제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다가가서 손잡아드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는데.. 아빠가 없다.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후회를 했다. 내 삶은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후회가 내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후회라는 감정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후회 덕분이었으니까. 후회라는 감정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글을 쓰면서 많은 감정들과 대면했다.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서서 때로는 아파하면서 용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후회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는 또 한 번 그 과정을 겪어내고 있다.
이 밤, 아빠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