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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Jan 14. 2022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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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새벽 2시.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무서운 꿈을 꿨단다. 아이는 울음으로 식구들을 깨웠다. 내 곁에 와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래. 안방에서 자렴. 동생처럼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은 큰아이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그래 너도 들어와. 아이들은 기어이 아빠를 몰아내고 안방 침대를 차지하고야 말았다.


이른 아침부터 활기찬 아이들과 달리 내 몸은 무겁기만 했다. 오늘 동서네가 오기로 했는데, 할 일이 많은데 남편은 아이들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새해 첫날부터 언성을 높이고 싶진 않았다. 애써 목소리를 낮추며 방문을 열었다. 


남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렇다. 남편은 어제 3차 백신 접종을 했다. 밤사이 오한이 왔는데 아이들 방으로 쫓겨난 탓에 혼자 밤새 힘들어했던 모양이다. 순간 남편에 대한 감정이 미움에서 연민으로 바뀌고 무거웠던 내 몸은 남편을 챙기느라 분주해졌다. 열을 재고 타이레놀을 먹였다. 두툼한 이불을 챙겨주었다. 도련님에게 남편의 상태를 알렸다. 만남을 또다시 연기했다.


아침을 먹으며 어머님과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 감기에, 내 허리 디스크에, 자가격리까지.. 연이어 벌어진(?) 일들로 시댁도 친정도 찾아뵌 지가 오래되었다. 동생네가 연락도 없다는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느껴졌다. 혼자 계시는 엄마의 적적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마음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애써 담담하게 통화를 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집안에서도 춥다며 경량 패딩을 입고 있었고, 생전 눕지 않는 사람이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생활했다. 덕분에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챙기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하루 종일 외출도 못하고 집에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시 시작한 글쓰기 덕분이었다. 단톡방의 대화를 보며 웃을 수 있었고 틈틈이 글동무님들의 글을 읽으며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 늦은 오후에는 붓을 들 수 있었다.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호랑이 사진을 골라 화선지에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호랑이에 감탄해가며 내 마음은 점점 평온해졌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 싸우다가를 반복했다. 아이들 방에 텐트를 쳐 주었다. 텐트 안에서 몇 권의 책을 읽어주었고, 하루는 내 얼굴을 싹싹 핥아댔다. 아이들은 웃다가 잠이 들었다. 남편의 열은 이제 떨어진 것 같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간다. 새해 첫날이라고 특별하지 않았다. 아마 내일도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충분히 소중한 날들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삶은 이어진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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