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무겁다. 어젯밤 과음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잠에서 여러 번 깼고, 아침 5시 반, 평소 같으면 러닝화를 신었을 시간에도 나는 침대 위에 웅크린 채 있었다. 몸이 일어나길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 공기를 마셔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장롱문을 열고 런닝복을 꺼내 입는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루틴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따르고 억지로 목을 넘긴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반겨줬다. 몇 날 며칠 찜통처럼 달아올랐던 이 공간에서 처음 느껴보는 시원함이었다. ‘나오길 잘했어.’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서울숲을 향해 천천히 걷다가 러닝을 시작했다.
그때, 경원중학교 담장 너머 운동장에서 청소를 하던 한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청소기를 내려두고 아이들이 놓고 간 농구공을 들더니, 몇 번 튀긴 후 갑자기 농구대 쪽으로 덩크슛을 시도하셨다. 마른 체구에 굽은 어깨, 하지만 손끝에는 오랜 기억의 감각이 묻어 있는 듯 하다.
순간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농구를 하며 웃고 뛰었을 그 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이 뭉클해지는 건, 요즘 들어 자주 있는 일이었다. 너무 자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자꾸 눈물이 난다. 햇살 비치는 벤치, 길가의 작은 꽃, 그리고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그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면, ‘혹시 내일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감사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요즘이다.
예전에 공황장애를 겪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 지금은 번아웃의 기운이 짙게 감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고,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혼란스럽고, 어느 순간엔 모든 걸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엔 ‘절에 들어가 비구니로 살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단순히 피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정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제 함께 술잔을 기울인 누군가가 절에서 봉사하는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마치 내 마음을 들킨 듯, 신호 같았다.
나는 가끔 ‘생각이 현실을 끌어 당긴다’는 말을 믿는다. 그게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위안이 된다. 그래서 함부로 부정적인 생각을 오래 품지 않으려 애쓴다. 독서도 그 중 하나다. 책 속에 숨어 있는 문장 하나가 나를 살리는 날도 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태양은 떠오른다.”
– 빅터 프랭클
내 삶의 태양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영업을 28년 해오면서 수없이 많은 ‘안 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결국 해냈던 경험들이 있다. 몇 시간 동안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서서 기다리던 나. 내 진심이 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나. 결국, 모든 복잡함을 이겨내고 해냈던 건 작은 루틴과 믿음의 힘이었다.
오늘 오후엔 영업사원들과 중요한 회식이 있다. 회사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아직 머릿속 정리는 안 됐지만, 가서 진심을 나눌 것이다. 모든 건 ‘진심이 통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는 믿음 하나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몸은 여전히 뻐근하고 마음은 무겁지만... 나는 알았다.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지금 무언가를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나쁜 기운이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다면, 좋은 기운으로 쫓아내면 된다.
나는 그런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사람이다. 회식 후, 한강 한 바퀴를 돌고, 샤워를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나면... 오늘도 괜찮아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엔 편안히 잠들 것이다. 몸의 모든 세포가 따뜻하게 순환하고, 고요하게 쉬어가길 바란다.
가장 힘든 요즘, 가장 깊은 나 자신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