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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05. 2024

8장. 허지광 vs 뒷돈사

이게 현실이야!

8장. 뒷돈 사.     



지광은 세무조사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세무사를 만나러 갔다. 

매번 사무장만 만나고 여직원들과 통화만 했을 뿐, 세무사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 내가 누군지는 알려나?’      


몇 년 전 매장으로 불쑥 찾아온 사무장의 말솜씨에 넘어가서 기장 대리계약을 체결했었는데 그 당시 국세청 20년 경력에 수없이 많은 이력을 들먹였기에 이정도 사람이면 사업할 때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지만 자신도 합법적인 절세를 위해 세무사를 찾은 게 아니라, 잘못될 것을 미리 걱정하며 그것을 잘 막아줄 세무사를 찾은 것이었다.     


 

사무장의 안내를 받아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 앞에는 ‘세무사실’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는데 노크를 하고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굳은 인상의 60대 남자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는데 생각보다 세무사가 너무 불편한 인상이었다. 처음 마주한 그의 얼굴은 어딘가 차갑고 괴팍한 느낌이 있었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뜻함을 찾아볼 수 없고 너무 무심하게 보였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이 사람은 분명 살아온 삶이 투명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지광은 지금 이 사람의 지저분했던 인생이 차라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 세무조사를 받고 계시다구요? 미리 연락주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건 초기대응이 가장 중요한데….” 

건조하고 딱딱한 세무사의 성의 없는 말과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는 말투에 지광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의 도움이라도 받아야만 했으므로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 갑자기 찾아오더라구요. 그런 경우도 있나 보죠? ” 

억울함을 괜히 한번 표시해봤지만, 사실은 이미 공무원에게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그리고 전 대단히 잘 못 한 게 없는데요? ” 

“ 뭐, 다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광의 말에 이런 말이 지겹다는 듯 세무사는 허리를 한 번 쭉 펴고 처음부터 한번 얘기해보자고 말했는데 지광은 그 행동을 보며 오늘의 상담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광은 어쩔 수 없이 사업의 전반에 관해 설명했고 매출을 누락한 사실과 해당 금액만큼 가공계산서를 발행해 수수료를 챙겼다는 것도 말했다. 충분한 이야기를 들은 세무사는 가공계산서 건이라서 쉽진 않겠지만 자기가 잘 한번 해결해보겠다고 했다. 대신 뒷돈이 좀 들 수 있으니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였는데 그 말에 지광은 깜짝 놀랐다. 


“ 뒷돈이요? 지금 뇌물 말씀하시는 거죠? ” 

너무 노골적인 질문에 세무사는 헛기침을 하며 지광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얘기는 서로 눈치가 통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상대방이 이렇게 놀란 반응을 한다면 세무사로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 이런 일을 하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공무원하고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게 그냥 되겠어요? ” 세무사는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는 말투로 나무라듯이 얘기했고 지광은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질문했다. 

“ 그럼 얼마나요? ”


“ 지금 금액이 꽤 커서 어디까지 섭외해야 할지 고민되긴 하는데…. 5천 정도는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수수료는 별도로 5천이구요.” 

“네? 그럼 1억이요?” 

세무사의 말에 지광은 깜짝 놀라며 원망스러운 말투로 얘기했다. 


“ 예전에 여기로 계약할 때 청 출신이고 뭐 그러면서 세무조사 나오면 이런 일을 잘 해결해 줄 것처럼 말했었는데…. 그때 말한 방법들이 이렇게 뒷돈 주는 것이었나요? 그런 거면 굳이 제가 왜 세무사를 쓰나요?” 


지광은 세무사를 찾아오면 뭔가 전문적인 방법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받을 줄 알았는데 이런 구시대적 대화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돈 1억이면 차라리 세금을 더 내는 게 낫지, 왜 공무원 뒷구멍에 넣어주냐는 생각도 들기에 더욱 화가 났다.    

  

“ 흠. 대화가 잘 안 통하시네. 그럼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저도 다른 업무를 봐야 해서 이런 일로 실랑이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1억도 대략 얘기한 거지 더 들어갈 수도 있어요. 지금 사장님이 처한 상황에서 나올 세금이 얼만지도 생각하셔야죠.” 


세무사는 생긴 모습답게 차가운 말투로 지광과의 대화를 중단했고 상담 테이블에서 자신의 책상으로 휙 돌아가 버렸다. 지광은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계속 앉아있었는데 잠시 후 들어온 사무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밖에 나가자고 안내했다. 


“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세무조사 맞은 사람에게 1억을 준비하라니.” 

그 말을 들은 사무장은 원래 실력이 좋을수록 비싼 거라며 오히려 세무사 비용이 적절하다는 듯 떠들고 있었다. 


“ 뒷돈 주는 게 실력이에요? 아니 그게 무슨 전문가야? 그럼 세무사라고 하지 말고 ‘뒷돈 사’라고 하던지.” 

지광의 날 선 말에 사무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어주며 지광을 밖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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