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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03. 2024

6장. 김신욱 vs 여진

장례식장

6장. 김신욱의 장례식장.     


함께 골프를 치고 며칠 후 갑자기 김신욱 사장이 죽었다.

갑작스레 날아온 부고에 지광은 손이 떨려왔다. 얼마 전 골프장에서 만난 이후로 한동안 부쩍 가깝게 지냈었는데 현재 받고 있는 세무조사에 대해 전화한 후로는 연락이 두절 됐었고 그 이후로 받은 연락이 부고였다. 그래도 음향 쪽 사장 중에서는 가장 신뢰하고 친했던 사람이라 지광은 한동안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지광은 세무조사를 받는 중이라 마음이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 큰일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병원 건물 지하로 들어서니 아무리 경험해도 적응 안 되는 향냄새가 코를 찔러왔는데 마치 커다란 냉장고에 들어간 듯 서늘함을 느끼면서 김 사장의 이름을 찾았다. 잠시 두리번거린 후 안내전광판을 통해 김 사장의 분향소가 VIP 1호실인 것을 확인하고는 느린 듯 빠른 걸음으로 분향소를 찾아갔다.      


‘ 여기가 맞나? ’


1호실을 잘 찾아왔음에도 지광을 의심하게 만든 건 수많은 국회의원의 화환과 각종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화환이 마치 광고하듯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 사람이 이 정도로 인맥이 많았었나?

고급 음향기기를 가지고 사업하려면 이런 인맥들이 있어야 하는 건가? ’


지광은 갑자기 주눅이 들고 자신의 인맥으로는 이쪽 업종으로 전환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지광은 김 사장의 아내를 보자마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고개만 숙이는 그녀를 보자 더욱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원래 꽤 미인이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며칠 사이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 저 이런 말씀 죄송하지만, 김 사장님께서는 어쩌다가….”

지광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대답을 머뭇거리던 사모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 졸음운전이라고 하네요. 부검 결과 소량의 알코올도 확인됐고요. 간단하게 반주를 했나 본데…. 시외라서 대리운전을 안 부르고 직접 운전하다가 그랬던 것 같아요. ”


‘ 잉? 그렇게 돈 많은 사람이 시외라서 대리비를 아끼려고 직접 운전했다고?’

뭔가 이상했다. 어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나? 만약 술을 먹긴 했어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면 잠깐 정도 운전하는 것은 욕심이 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도 죽음이 납득될 만큼의 이유가 되긴 힘들었다.


“ 제 탓도 꽤 있을 겁니다. 사실 제가 요즘 세무조사를 받고 있거든요. 아마 저 때문에 파생조사가 나올까 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셨을 거예요. 술도 그래서 드셨을 거고….”

그냥 예의상 한 말인데 사모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 잠시 내실로 들어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그녀의 말에 지광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들썩한 뒤쪽 접객실을 슬쩍 한 번 둘러본 후 내실로 따라 들어갔다.      

김 사장의 아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 남편이 살해당한 것 같아요 ”

“ 네?” 지광은 놀란 눈으로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 사장님이 살해당하다니요.”


사모는 검지를 들어 목소리를 낮추도록 눈빛을 보냈다.

“ 쉿, 누가 들을지도 몰라요 ”

지광은 사모의 이상한 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시도했다.

      

“ 사고가 있기 전 제 남편이 집에서 했던 말이 있어요.

허 사장님의 세무조사가 시작된 후 누가 자기를 미행하는 것 같다구요. 그래서 상황이 악화되면 어디론가 좀 피해 있어야 할지도 모르니 간단한 짐만 좀 챙겨두라는 말을 했었어요.

전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죠. 세무조사, 심지어 허 사장님의 일인데 왜 남편이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전 남편의 죽음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걸 누구에게 상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허 사장님께 처음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


지광은 평소 김 사장과 친분을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깊은 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에 사모의 이 말은 꽤 당황스러웠다.

‘김 사장이 평소 집에서 내 얘기를 많이 했었나?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지?

그나저나 내가 받고 있는 조사가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광은 사모의 급작스러운 도움 요청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 경찰에는 말씀해 보셨나요? ”

“ 네…. 경찰은 소량이지만 알코올이 검출되어서 음주 사고라고 단정 짓고 있어요. 동승자도 없었구요”

사모의 얼굴을 보니 절망이 가득했다.

오죽하면 다른 이들의 경조사 때 몇 번 만난 적밖에 없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녀도 큰 기대 없이 한번 부탁해 보는 것일 거라고 지광은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뾰족하게 떠오르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광은 사모와의 대화를 마치고 식사를 위해 접객실로 이동했는데 그때 놀라운 사람을 발견했다. 골프장에서 만났던 김 사장의 애인이었다.

‘ 이름이 여진이었나? ’

이런 생각을 하며 잠시 멈칫하고 있는데 여진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

어깨 부분이 과하게 각져있는 파란색 정장 재킷에 검은색 바지를 몸에 딱 맞춰 입고 살짝 웃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지광은 바로 긴장이 풀어졌다.


“ 아. 네 기억하죠. 기억하고 말고요….”

지광은 실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멍청하게 서 있었는데 여진이 자신의 테이블로 함께 하자고 안내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데 여진의 스타킹이 살짝 눈에 들어왔다. 무늬가 있는 검은색의 망사재질 스타킹이었는데 지광은 바지정장에 저런 포인트 하나로도 이렇게 야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눈길을 거두었다. ‘ 이 여자는 정말 숨만 쉬어도 야하네.’     


“ 아까…. 사모님과 안쪽 객실로 들어가시던데 혹시 무슨 얘기하셨어요? ”

지광은 깜짝 놀랐다. 그 안에서의 대화가 비밀이기도 했었고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 아…. 별말 안 했어요. 그냥 사업체를 앞으로 어떻게 정리하면 될지 물으시더라고요.”

지광은 순간적인 재치로 변명이 될만한 대답을 잘 늘어놓았다.


“ 아하. 그러셨구나. 흠…. 그래서 말인데요. 사실 저도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김 사장과 크게 가까운 관계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나에게 자꾸 이러는 것인지, 지광은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 다들 나에게 뭘 알고 싶은 거지? ’


“저도 사실 김 사장님의 영업을 도와주면서 함께 사업도 하는 관계였는데요. 이번에 허 사장님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가공계산서 때문에 다들 좀 곤란해졌잖아요. 그걸 제가 좀 파악해서 해결해보려고 해요. 국세청에 아는 인맥이 좀 있거든요. 혹시 제가 같은 상황인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할 수 있게 허 사장님이 가짜로 발행하신 가공계산서 장부를 좀 주실 수 있나요? ”


여진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지광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스러웠다.


“따로 정리된 것은 없지만, 매장에 가면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할게요.”

지광은 자리를 피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급한 말로 둘러댔는데 사실 모든 거래상대방에 대한 장부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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