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의 죽음

by Keith Henry

깊은 밤의 하늘만큼이나 아득히 먼 옛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피부는 빛을 머금었고 그의 순수한 영혼은 끊임없이 파도치는 은빛 눈을 통해 나의 가슴으로도 읽힐 정도였다. 소년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였고 그들의 이야기에 언제나 귀를 기울였다.


그 소년은 신들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신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가슴으로 - 그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이 되었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라면 내가 말하는 이 소년만큼이나 순수했었기에 그들의 바라는 소원에도, 그리고 이 순수한 소년이 이뤄주는 소원에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세상은 더없이 풍요로웠고 사랑과 행복이 언제나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시기와 질투는 모두가 풍요로운 가운데 피어났다.


세상 어느 곳에 꽃의 요정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모습과 향긋한 향기로 주변 모든 이들의 사랑을 가득 받았다. 그녀 자신에게는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었고 사랑이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감정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 아름다운 소년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만족에 빠져 살던 그녀의 마음은 온통 이 소년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소년에게 다가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였다. 하지만 이 소년의 사랑은 모두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고백을 거절하고 말았다. 사실은 너무나 순수했기에 이 세상을 모두 사랑하여도, 둘 만을 위한 사랑은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요정은 그런 소년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턱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으로 둔갑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돌로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소년은 세상 처음 몹시도 난처한 소원을 부탁받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고뇌에 휩싸여 미소도 잊은 채 홀로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만 것이다. 요정은 이런 소년의 모습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쉽사리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고 이제는 자신을 사랑해줄 줄 알았었는데 처음으로 소년이 누군가의 소원 앞에 꼼짝 못 하며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지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 좋은 방법을 찾았어."

"방법? 무슨 방법."

"예전에 나를 찾아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돌로 만들어 달라던 그 소원을 이뤄주는 방법."

소년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알 수 없단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나를 한 번 꼭 안아주더니 나의 이마에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면서 이따금씩 그 소원들도 이뤄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돼."

소년의 말을 듣자니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나의 가슴을 꽉 쥐었다. 그의 목소리는 온유하고 말은 가벼웠지만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다.


소년은 눈을 감았다. 그는 점차 투명해지더니 이내 금빛과 초록빛, 주황빛이 섞인 가루가 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또르르 나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더 이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소년 신은 이 세상에 없었다. 대신에 그는 모든 이들이 잠들어 꾸는 꿈이 된 것이었다.


"아......."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운명을 보는 신으로서, 작은 유리병에 꿈이 된 소년의 가루를 담고 기록으로 남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