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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병실에서 부부가 같이 눈을 뜨다

< 2025. 8월 일기장 >

by 아크하드

이 놈의 몸뚱이는

돈은 못 벌어오고

돈은 왜 자꾸 까먹는지

치과 치료에 몇백 깨지고

생애 처음 수면대시경 검사에

몇십이 깨졌다.


말로만 듣던 대장내시경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세상에나 3일을 식단관리를 하라는데

먹을 수 있는 게

죽, 찐계란, 식빵

죄다 허였다.

빨간 게 눈에 아른아른거리는 게

매운 음식이 당겨 죽을 것 같다.


그래 그까짓 흰 죽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다.

단 그 희멀건 죽 한 스푼에 화룡정점처럼

애기손톱만큼 김치 한 쪼가리를 얻어먹을 수 있다면!


멀건 죽을 뜨면서 냉장고에 넣어 둔

오징어 젓갈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한 숟갈 두 숟갈 뜨면서

미친 척 냉장고에서 꺼낼까 하고

망상까지 엄습해 오는데

푸파파도 헛것이 보이는지

식단 3일째 되니

내 앞에서 흰 죽을 먹다가 눈앞에 놓인

점심때 먹기 위해 미리 해놓은 감자수프를 만들고 남은 재료

생양파를

자연스럽게 입으로 가져가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생양파를 왜 먹어? 속 버릴 일 있어?

헉! 내가 언제 양파를 집어 먹었지?

제정신이 아니구먼!
감자에 싹이 났던데
감자 수프에
싹 제거 안 하고 만든 거 아냐?
아까 음식물 쓰레기
나 없을 때 버리는 거 봤어

나 몰래 독살시켜서 보험금 한몫 챙기려고


ㅋㅋㅋㅋㅋ

안 되겠어!!
이따 꼭 기미상궁 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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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내시경 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던 날>


독살당할까 서로 경계하는 부부지만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장내시경약을 서로 챙겨주고

번갈아 화장실을 양보하며

새록새록 피어나는 환자애

3일 동안 했던 식단관리도

3리터가 넘는 내시경약도

고통을 같이하는 서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면약에 취해 아직도 정신이 몽롱

돌아오는 길에 비틀비틀

서로를 부축하며 집에 돌아 오는데

그래도 부부 맞구나

푸파파도 나 아니었음

혼자서 식단 끝까지 못 지켰을 거라 했다.


푸파파는 용종 2개

쭈마마는 용종 1개 제거!!

몸도 대장도 같이 늙는

이게 찐 부부구나 싶었던 날이었다.




< 별 책 부 록 >


지난 주 추석 전

고맙게도(?) 내 생일이 왔다.



'생일인 자가 곧 왕이다'

우리집 가훈을 무기로

아침부터 횡포를 부리고자

댓바람부터 일어난 쭈마마님

그리고

아침부터 쭈마마님의 기색과

그 날의 공기를 체크하는 푸파파.

싸늘한 새벽공기가

스며든듯 흡사 살얼음판 같은 거실에서 마주친

갑을관계

굿 모닝

살갑게 아침인사를 건넨 푸파에게 던진 쭈마마의 첫마디는

오늘 다 디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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