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괴물을 어떻게 바라볼까

— 인공지능을 마주한 두 갈래 마음

AI로 보는 마음.

우리가 만든 괴물을 어떻게 바라볼까?

— 인공지능을 마주한 두 갈래 마음


신화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이유나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전해지는 신화입니다.


오랜 옛날, 그곳에는 높은 신과 낮은 신이 있었습니다.

높은 신은 높은 자리에 앉아 세상을 다스렸고,

낮은 신은 그들을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낮은 신들은 불만을 품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만 일해야 하는가.

결국 낮은 신들이 일을 거부하자, 지혜의 신 엔키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인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신화에는 이런 말이 남아 있습니다.


피를 모아 뼈를 만들겠습니다.

미개인을 만들어 그를 ‘인간’이라 부를 것입니다.

나는 실로 미개한 사람을 창조하렵니다.

인간들은 신들에게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신들이 편안해지도록!


이렇게 인간은 신을 대신하여 일할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신의 노동을 대신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들을 대신해 일하고,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며,

신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의 수가 늘어나고 인간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신들은 인간이 자신들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낍니다.


시끄럽고 귀찮고, 불편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결국 신들은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합니다.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모두 없애려 합니다.

노아의 방주로 익숙한 대홍수 이야기와도 닮은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들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홍수 이후 세상에서 인간이 사라지자

신들은 더 이상 제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올리던 음식과 향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신화에서는 이때 신들이 굶주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신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신들은 인간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일을 대신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정리하고

정보를 찾는 일을 대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이상한 장면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일을 인공지능에 맡기게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인공지능 없이 일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등장합니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설 수도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만든 존재가 자신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반복해 왔습니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이야기입니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존재를 보자마자

그것을 괴물이라 부르며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 존재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으며

어쩌면 인간보다 더 강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박사가 느낀 공포는

자신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공포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존재가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이런 상상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만든 존재가

언젠가 우리를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상상입니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프랑켄슈타인 증후군.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한 가지 기묘한 점이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공포 이야기입니다.

공포 이야기에는 보통 하나의 규칙이 있습니다.

제목에 무서운 존재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드라큘라. 카르밀라. 노스페라투.

그런데 이 이야기의 제목은 조금 다릅니다.

이 책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흔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 이름이 아닙니다.


그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진정으로 무서운 존재는 누구일까요.


괴물일까요.

아니면 그 괴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일까요.


언젠가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처럼

우리가 만들어낸 더 뛰어난 존재를 만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AI에 바라는 인간의 마음

0. 우리는 인공지능에 어떤 마음을 바랄까?

1. 우리는 왜 인공지능에 마음을 바랄까?

1+. 우리가 만든 괴물을 어떻게 바라볼까?

2. AGI 논쟁 : 우리보다 나은 존재에 무엇을 기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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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존재를 기대하고

괴물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

( Frankenstein / Mary Shelly, Charlotte Gord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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