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에서 크루즈를 타고 아스완, 에디푸, 룩소르까지 나일 강 상류에서 하류로 여행을 떠난다. 거대한 크루즈들이 경쟁하듯이 강을 가로지르며 멋진 풍경을 만든다. 최고 럭셔리 크루즈라고 가이드가 자신 있게 소개했다. 승선해서 돌아보니 예전에 탔던 KTX 럭셔리 여행객차 '해랑'의 나일 강 버전이라고 할까? 선실 안은 깨끗하고 나름 넓었으며, 로비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잘 되어 있었지만, 그 외 시설은 별로 없어서 여객선으로 좋은 수준이었다. 분명한 건 타이타닉 호와 같은 크루즈는 아니었다.
나일 강 크루즈를 위해 승선했던 Concerto II
저녁에 아부심벨 항구에 도착하자 관광객들은 저마다 예약한 배를 찾아 승선했다. 지하 1층을 포함하여 총 4개 층의 크루즈였다. 선상을 둘러보니 수영장과 선베드, 파라솔과 Bar가 있었지만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수영을 하는 용감한 승객은 없었다. 첫날 저녁에 식사 후 9시부터 웰컴 이벤트가 있다고 안내를 받았다. 식사 후 잠시 누워있다가 음악소리에 홀(Hall)로 갔더니 벨리댄스를 추는 여성이 있었다. 20년 전에 봤던 댄서에 비해 무척 건강한 모습에 웃음이 났다. 흥겨운 음악과 댄스를 잠시 구경하다 나와 선상으로 올라갔다. 밤의 불빛 아래에서 바라본 해변과 파라솔이 운치가 있었다.
Concerto II 크루즈를 탑승한 첫 날은 운행하지 않고 정박된 상태로 잠을 잤다. 선상에 있던 수영장과 썬 베드들.
아침 일찍 크루즈는 나일 강 하류로 항해를 시작했다. 창문으로 옆을 지나는 다른 크루즈가 훤히 가까이 보인다. 이 크루즈에는 유럽 관광객들만 승선해 있었는데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수영과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에서 내려 관광을 하고 돌아오니 2달러 팁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배의 직원이 침대 시트로 귀여운 동물을 만들어 놓곤 했다. 1달러를 둔 날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2달러 팁의 힘인가 보다. 시트만으로 어찌 이리 멋진 작품을 만들었는지 신기했다.
엄마와 함께 이 노을을 볼 수 있다면...
하루 일정을 마치고 배에 승선하여 샤워하고 잠시 쉼을 가졌다. 해 지는 시간을 확인하여 배 위로 올라갔다. 나일 강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정말 아름다웠다. 워낙 건조하고 맑은 날씨인지라 하늘도 파랗고 그래서인지 해가 지는 하늘도 붉었다. 짙은 푸른 강 위로 줄지어 가는 여객선들과 붉은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자니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나 생각이 났다.
한참 정신없는 양육의 시간을 끝내고 인생의 여유를 즐길 51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나는 엄마보다 더 오래 살고 있다. 엄마의 나이보다 많아지면서 나는 그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시어머니와 시동생들을 모시고 살면서, 아들을 낳고자 했으나 딸만 4명을 낳으셨다. 장손의 아내로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평생의 부담을 지고 사셔야 했다. 뭐 대단한 집안도 아닌데...
막내를 임신하셨을 때, 엄마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돼지를 네 마리나 잡아서 잔치를 벌이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모처럼 고기를 실컷 먹겠다고 생각하고 요리를 끝내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고기들을 트럭에 담아 막 떠나더란다. 돼지를 4마리나 잡았는데도 고기를 한 점도 맛보지 못해서 너무 속상해서 우셨다고 했다. 꿈에서 깨자, 딸이라고 생각하셨다. 태몽이라고 하기엔 너무 웃프다. 그렇게 넷째 딸을 낳으셨다.
48세에 젊은 할머니가 되셨고 외손자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밤, 복통으로 응급실에 가셨는데 바로 응급으로 검사를 받으시고 며칠 만에 개복 수술을 받으셨다. 이미 내장에 암세포가 퍼져서 의사가 장기들을 절제하다가 중간에 마무리하고 닫았다고 했다. 예후가 안 좋아서 2개월 더 사실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가족들 모두 아연실색했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많은 사연과 과정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수술 후 2년 6개월을 더 사시고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이후로 내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자!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자!
배에서 보니 산 너머로 태양이 내려가고 있다. 붉게 물든 하늘과 나일 강.
고개를 돌려 보니 앞서가고 있는 여러 척의 배들이 만들어 내는 멋진 전경이 펼쳐져 있다. 가까이에 있는 크루즈 배와 저 멀리에 있는 배까지 열 대는 족히 되어 보였다. 노을과 함께 장관이다.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시니 살면서 정말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큰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나의 기쁨을 자신의 일처럼, 스스로의 상황과 비교하지 않고,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할 사람은 부모님 뿐이란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과 시원한 바람, 멋진 하늘을 보고 있자니 이 아름다움을, 이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