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어느 날, 둘째 처제 생일 축하하는 날이다. 농원(옥미원)의 또 다른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 1년 365일 중 특별한 날, 오 남매의 생일을 농원(옥미원)에서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오 남매의 생일날 함께 하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됐다. 내 생일엔 처제들에게 선물 받은 기억이 많은데 난 제대로 선물 한 번 안 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은 못하더라도 오 남매의 생일날에 소고기를 먹이고 케이크에 촛불 밝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어려서 생일의 특별함을 모르고 살아서 무심하게 잊고 있었는데 오 남매는 생일의 특별함을 간직하고 살았을 거 같았다. 오 남매는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집에서 자랐으니 생일을 특별한 날로 기념하며 지냈을 것이다.
각자 가정을 이루고 살아오면서 누구는 지우며 누구는 열심히 기념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생일이라고 특별히 보내지는 않았다. 그냥 일상의 365일 중 하루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무슨 특별한 날 보다는 평소의 삶을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에겐 생일은 좋은 기억이고 행복한 기억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일이니까. 나쁜 기억은 꺼내지 말고 깊이 묻어두고 좋은 기억은 꺼내보면 참 좋은 일인 거 같았다. 그렇게 좋게 살아가면 될 일이다.
소고기는 내가, 케이크는 처남이 샀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생일이 닿는 달에 모두 같이 만날 수 있는 날, 옥미원에서 우리들만의 파티를 하자고 했다.
그날, 모두 모여 소고기를 굽고 환담을 나누면서 맛있게 먹었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인지 둘째 처제가 너무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거 같았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다.
8월의 어느 날, 처남 생일 파티하는 날이었다. 오 남매가 전원 참석했고 처남 딸과 우리 손자가 덤으로 참석했다.
점심은 둘째 처제와 아내가 마트에 가서 사 온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처남이 숯불구이도 선보여 숯향이 배어난 맛있는 소고기도 먹을 수 있었다. 조금만 수고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썰을 들으니 그렇긴 하다만 난 그런 수고는 별로다. 수고하시는 분 덕분에 맛있게는 먹어줄 수 있다, 고 했다.
딸에게 맛있는 고기를 먹이려고 연기를 마시며 구워 주는 처남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딸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존경스러웠다.
식사 후 나는 작약 밭에 흙을 더 퍼다 넣었다. 아들이 사다준 토시와 얼굴, 머리 가리개를 하고 작업하니 훨씬 땀이 덜 났다. 땡볕에서도 일을 할만했다.
잔디밭에 설치한 수영장에서는 아내와 손자가 깔깔대고 놀고 차양 밑에 4남매가 둘러앉아 담소를 나눴다.
한참 후 생일 케이크 앞에 모여 앉아 처남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케이크는 큰 처제가 준비했다. 막내 처제 ‘깜짝 편지’ 이벤트는 여러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편지를 쓰며 막내 처제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데 처남은 읽으면서 울컥하는 거 같더니 이내 삼키더라.
나중에 물어보니 안경을 안 써서 잘 안 보여 울컥하다가 말았단다. 편지를 공개하랬더니 둘만의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단다. 궁금하긴 한데 사생활을 존중해야지.
어쨌든 옥미원이 또 다른 삶을 만들어주고 있는 건 확실했다. 나이 50이 넘도록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한 일이다.
막내 처제가 오빠 선물을 사는 김에 내 티셔츠도 사 왔다. 덤으로 하나 얻어 입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괜히 쑥스러웠다.
농원(옥미원)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내놓을 때면 지붕이 뻥 뚫린 집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오 남매가 함께하는 생일 이벤트를 왜 진작 하지 못했나!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9월의 어느 날, 막내 처제의 생일이었다. 처남이 준비한 케이크에 막내 처제의 지천명 50세의 촛불을 켜고 축하노래를 불렀다.
막내 처제가 큰 언니 옷과 나에게 책을 선물했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옥미원이라는 어미의 자궁과 태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생일을 챙겨 주시는 두 분께 오히려 제가 축하를 받는 것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적어 보았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문자를 보낸 건 나중에 확인했다. 거기 들어가면 휴대폰 던져놓고 일만 하니 문자를 못 봤었다.
난 전날 막내 처제에게 노래를 불러줄 생각을 했다. 기타를 치며 녹음을 했다. ‘고맙소’를 불렀다. 야외라서 소리가 작아 처남의 도움으로 블루투스에 연결하니 한결 나았다.
사실은 그걸 틀어놓고 생음악으로 들려주려고 했는데 예상 밖에 딸 내외와 조카 내외가 참석해 쑥스러워 못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막내 처제가 눈물을 흘렸다. 많이 외로웠었나 보다. 우리가 막내를 너무 외롭게 방치했나 보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찡했다. “남겨진 세월도 함께 갑시다. 고맙소~고맙소~”“막내야~우린 널 사랑한다. 넌 소중해. 함께 행복하자. 고마워”
10월을 건너 11월의 어느 날, 큰 처제의 생일이었다. 큰 동서가 하늘나라로 가고 처음 생일을 맞는 날이다. 이렇게 함께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의 하루가 됐다.
큰 처제는 속으로 많이 울었을 거 같았다. 모두들 애써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게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그 날의 슬픈 기억을 잊으려고 죽어라 일들을 했다.
그날따라 일이 많아 작업이 늦어진 관계로 큰 처제 생일 축하 케이크 커팅이 늦어졌다.
이번엔 기타를 가져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불렀다. 일을 하고 나면 목소리가 마르고 더 갈라져 어려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랑으로’를 합창으로 모두 같이 부르고 농원(옥미원)을 탄생시킨 최초의 마음 노래 ‘들꽃’을 아내와 둘이 불렀다. 혼자 ‘동행’도 불렀지만 역시 슬퍼 목이 메어 못 부르겠더라.
그 날은 오 남매와 합창으로 노래를 부른 최초의 날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함께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다. 앞으론 자주 같이 노래를 불러야겠다. “큰 처제! 생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