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옥미원에 적이 출몰했다. 강적이 나타났다. 어느 날부터인가 몽골 천막에서 처음 본 벌레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다리가 많이 달린 벌레였다. 모두 알 수 없는 벌레에 놀라기도 했고 징그러워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예기치 않던 돌발 사태였다. 처음에는 몇 마리 보여 쓸어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음 주에 가보니 좀 더 늘어난 수를 보고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제들이 징그러워 쩔쩔매고 아내는 벌레퇴치 안 되면 안 오겠다고 엄포도 놓는다.
처남과 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오래간만에 발견한 우리들의 낙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요일이면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가는 우리들의 정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벽이 생기면 안 되는 노릇이었다. 낮은 임야의 드넓은 땅에 벌레 퇴치한다는 게 여간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엔 돈벌레인 줄 알았다. 전원생활을 오래 한 친구한테 물어보니 경험이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보니 노래기였다. 습한 곳을 좋아하고 해가 떨어지면 활동을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한낮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해만 넘어가면 천막 안의 살림 더미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1단계로 바퀴벌레 약도 뿌려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를 뒤져 올데스가 퇴치 약으로 좋다는 정보를 얻어 구입했다. 천막 주변과 산 아래 빙 둘러서 띠를 둘러 뿌려 놓았다. 관찰해보니 사선을 넘어 약가루를 묻힌 노래기들은 사망하고 일부 산에서 내려오던 놈들은 퇴각하기도 했다. 1차 작전이 성공한 듯 보였다. 다음 주에 가보니 사망한 노래기들이 널려있고 천막에서는 노래기가 또 기어 나왔다. 효과가 없었다. 6.25 때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사선을 넘었나 보다,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전 날에도 처남이 들어와 살충 작업을 끝없이 했단다. 약이 효과가 없음에 실망하고 그날도 자정이 넘도록 노래기와 전쟁을 치렀다. 킬러로 죽이고 토시로 불태워 죽이는 일을 반복했다. 식용 규조토가 유효하다고도 해서 열심히 뿌려놓았다. 끝이 없었다. 처남과 나는 이 전쟁을 승리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로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여인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남자들의 본능이었으리라. 산을 살펴보니 쑥밭에 노래기들이 고물고물 했다. 무모한 싸움이었다. 산을 다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2단계로 방역회사에 다니는 이웃과 상의해서 거금을 들여 트럭으로 1톤을 농원과 뒷산에 골고루 잔뜩 뿌렸다.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여전히 노래기는 출몰하고 수를 줄이지 않았다. 방역회사 하고는 다음에 약값만 지불하고 한 번 더 뿌리자고 약속하고 다른 궁리를 했다.
3단계 작전을 짰다. 아무리 궁리해도 특별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다가 처남과 나는 산을 깎기로 합의했다. 남의 산에 손대기가 꺼림칙해서 안 했는데 그 방법밖엔 없을 거 같았다. 난 예초기로 1m 정도 깎아나갔다. 뒤따라 아들이 갈퀴질을 하고 처남은 약을 뿌렸다. 산을 깎고 나니 우리 땅이 넓어진 거 같았다. 광개토왕도 아니고 영역 확장을 하냐고 처남이 농담을 했다. 난 예초기를 난생처음 잡은 것이다. 종중 묘원 벌초할 때는 동생들이 예초기를 잘 다루니 난 갈퀴질만 했었다. 진동으로 양 손이 전깃줄이 울리듯이 징징거리기도 했다. 다음 주에 가보니 확실히 노래기 수가 줄었다. 성공적이었다. “이거다”필 받아 1m를 더 깎아 올렸다. 영역 확장을 더 했다. 하얀 망초가 아름답게 뷰를 만들고 있어 아늑하던 정원이 조금 훤하긴 해졌어도 대만족이었다.
그렇게 50일의 장마와 함께 노래기와 전쟁을 치렀다. 천막에 현저하게 노래기가 줄어들어 약을 살포하지 않아도 되었고 장마가 끝나니 노래기들은 신기하게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농막도 지을 예정이었는데 노래기 때문에 농막도 포기할 뻔했다. 아내는 벌레를 싫어하니 노래기가 계속 나온다면 농막 짓는 걸 포기했을 것이다. 다행히 장마철에만 출몰했고 해마다 그런 것은 아니고 올해 특히 전국적으로 노래기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자연은 위대하다. 자연과 싸우는 것이 무모한 전쟁이다. 자연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하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