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소환

봉숭아 물들이기, 깨송이 튀김, 생선 석쇠 숯불구이

by 김근회

9. 추억 소환(봉숭아 물들이기, 깨송이 튀김, 생선 석쇠 숯불구이)

장맛비가 한창이던 8월 초에 봉숭아가 활짝 피었다. 봉숭아가 피니 어릴 적 물들이던 추억이 소환되었다. 아내, 둘째 처제, 막내 처제, 처남, 처남 딸 모두 모여 앉아 봉숭아 물들였다. 봉숭아를 아내가 전날 찧어서 준비해 갔다. 옥미원에서 채취한 것과 이웃집에서 채취한 것을 모두 찧었다. 서로에게 찧은 봉숭아를 손톱과 발톱에 싸매면서 모두 즐거워했다. 나도 양쪽 엄지발톱에 아내와 처남 딸이 물들여 줬다. 난생처음 물들이는 거다. 우리 어린 시절에 사내는 물들이지 않았으니까. 여자들만의 전유물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나도 봉숭아 물들여 보는구나!



9월의 어느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깻잎을 따러 죽전리에 갔다. 평소에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시간이지만 간신히 일어났다. 새벽 골프 치러 갈 때 말고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본 적이 없다. 6촌형은 벌써 와서 깨송이를 따놓고 있었다. 지난번 깻잎을 많이 따갔었는데 처가 형제들이 맛있게 먹어 벌써 동이 나버렸다. 아내가 깻잎을 더 따오라고 해서 깻잎을 더 땄다. 시기가 늦어 아래 줄기에서 좀 땄다. 누렇게 색이 변하고 모양은 빠지고 뻣뻣하겠지만 맛은 괜찮을 거란다. 6촌 형이 손이 빨라 금방 땄다. 난 처가 형제들 먹일 욕심으로 갔지만 6촌 형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보약이라도 지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 남매가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깨송이 튀김을 맛볼 예정이었다. 좀 더 따올 걸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맛만 보면 되지 뭐. 오후에 둘째 처제가 와서 아내와 같이 풀 먹여 널어놨다.




며칠 후 깻잎과 깨송이 젖히는데 풀을 먹인 거라 힘이 들었다. 아침에 아내가 뒤집어놓은 거라는데 또 뒤집어야 한단다. 찹쌀풀 먹여 놓은 거라서 찢어질라 부러질라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맛을 추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6촌 형 말마따나 밀가루 묻혀 그냥 튀겨먹어야겠다. 추억의 깨송이를 만들면서 아내와 둘째 처제는 옛날에 엄마가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새삼 생각하며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가 존경스러워 마음이 찡하기도 했다. 내년에 깨를 좀 심긴 해야겠다. 깻잎을 따서 오래도록 먹을 반찬을 만들고 깻잎 튀김과 깨송이 튀김도 먹을 수 있으니 쓸모가 많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생선 석쇠 숯불구이를 먹자고 했다. 난 어릴 적 먹어본 기억이 없지만 오 남매는 어릴 적 연탄불에 석쇠로 생선구이를 많이 먹었단다. 생선은 둘째 처제가 준비했다. 굴비, 고등어, 임연수, 갈치를 구웠다. 숯불로 구워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처음으로 생선을 종류별로 구워놓고 밥을 먹으니 이 무슨 호강인가 싶기도 했다. 야외에서 여럿이 함께 먹으니 이런 시도도 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도시에서는 생선 냄새가 배어 구워 먹기 꺼려지는데 우리들의 정원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종종 생선 파티를 하자고 했다.

봉숭아 물들이고 즐거워하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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