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이야기

농사를 잘 짓다.

by 김근회

10. 농사를 잘 짓다.


20평 정도의 땅에 이것저것 심어보기로 했다. 땅을 고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딱딱한 땅을 삽으로 일구었다. 포클레인으로 밀어 논 임야이니 땅이 딱딱해서 삽이 잘 안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의 열정은 활활 타올라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삽질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여자들도 나서서 곡괭이로 파고 호미로도 파고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딱 맞았다. 삽질 한 번 안 해 본 아들과 사위도 열심히 도왔다. 몇 고랑씩 일구어 나가니 불가능할 거 같았던 일이 가능한 일이 되었다. 여럿이 힘을 모아 열심히 땀을 흘려 파고 일구고 거름을 주니 농작물을 심어도 될 만한 땅이 되었다.

그 땅에 흘린 땀방울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이 흘린 거 같았다. 축구하면서도 그렇게 많이 흘려보지 않았는데 무지막지하게 흘렸다. 난 옛날에 시골서 살아 삽질 좀 해봤다고 삽질 전문으로 나섰는데 죽을 맛이었다. 축구하다가 왼쪽 무릎이 아파 절룩거리며 뛰지 못하고 심판만 보고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삽을 밟을 때는 그 무릎이 괜찮았다. 뛰는 무릎과 삽질하는 무릎은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농사는 둘째 처제가 담당하기로 했다. 난 시골에서 자랐어도 논일은 남자들이 하고 밭일은 여자들 몫이었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것도 모종을 심는 것도 해보질 않았다. 둘째 처제는 해봤냐 하면 천만에다. 농사 농자도 모르고 그림 그리고 첼로를 연주하는 우아한 여인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다. 누가 할 사람도 없었다. 농사지어 본 사람이 없으니 그냥 농작물 조금 심어 먹어보자고 의욕만으로 덤벼든 것이다. 땅 일구어 거름 주고 씨 뿌리고 모종 심어놓고 적당히 물만 주면 알아서 크겠지 하고 시작한 것이다. 가지, 토마토, 청양고추, 파프리카 모종을 사다 심고 열무, 상추, 부추 씨를 뿌렸다. 파와 생강도 심었다. 우리도 이렇게 시작하면서 농사를 짓는 거라고 흐뭇해했다.

다음에 둘째 처제가 농사를 아는 지인에게 문의하니 가서 봐준다고 가서 보더니 기가 막혀 어이없어했다고 했다. 고맙게도 검은 비닐을 씌워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농사법을 지도해줬다고 했다. 내년에 농사짓기 전에 자기를 불러 달라고까지 했다니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가!

난 검은 비닐은 잡풀 나지 말라고 씌우는 줄만 알았는데 수분을 보유하는 목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마나 우둔했던가! 유튜브만 둘러봐도 농사짓는 법 정도는 통달할 텐데 공부할 생각도 안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하여튼 은인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고추도 가지도 파프리카도 토마토도 열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척박한 땅에서 잘 커주는 거 같았다. 아내와 둘째 처제가 주 중에 들어가 물을 열심히 주었다.



어느 날, 40년 지기 아내 친구 내외가 구경 왔다고 했다. 내가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워 현장에 없었는데 농사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기가 짓고 있는 고추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기분이 좀 상했다. 농사가 목적이 아니고 오 남매의 행복을 위해 하는 일인데 알 만한 사람이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서운함이 들었다. 그들 농사는 나중에 탄저병으로 폭망 했다고 한다. 올해 기나긴 장마로 대부분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우리 고추는 작지만 실하게 많이도 열리고 농약을 하나도 안 했어도 주렁주렁 식구를 많이 늘려 실컷 수확해서 오 남매는 풍족하게 따 먹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다’란 말이 맞는 말 같다.

농사를 지으면서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둘째 처제가 토마토 지지대를 꽂는데 힘이 달려 잘 안 들어가니까 옆에서 보던 막내 처제가 쑥쑥 잘도 꽂았다고 한다. 언니보다 키는 작아도 힘은 확실히 우월함을 드러냈다. 원더우먼으로 부르기로 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그렇게 힘셀 줄이야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다. 배드민턴으로 단련된 체력인 거 같았다. 나중에 고춧대 등을 뽑을 때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삽질도 잘하고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었다. 벽돌을 캐리어에 가득 넘치게 담아 날라댄다. 옥미원의 대단한 일꾼으로 등장했다.

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수박은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씨가 들었는지 수박 덩굴이 뻗어 나와 수박 2 덩이를 내놨다. 막내 처제가 발견하고 무척 신기해했다. 아내는 어려서 할아버지가 똬리 만들어 받쳐놓아야 썩지 않는다는 걸 배워서 처남한테 받쳐놓으라고 했는데 다음 주에 가보니 줄기가 녹아버렸다. 복숭아만 한 수박이 그냥 사망했다. 아쉬웠지만 나중에 보니 수박이 수정이 안 돼 크지 못하고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에 수박을 심고 싶으면 철저히 공부하고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처제와 막내 처제가 토마토 지지대를 꽂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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