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가 인간에게 메시지를 주는 이유
의미를 나타내는 `존재`가 시간이 없다면
그저 그냥 거기에 있어서 정지해 있는 `존재자`일뿐이다.
시간이 있기에
변화가 있는 것이고 움직임이 있는 것이고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의미 지울 수도 있는 것이고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그저 가만히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시간이 없다면 한 폭의 그림일 것이고
바닷가 모래이고 돌멩이일 뿐인 것이다.
소리도 없을 것이고 바람도 없을 것이고
계절의 변화도 없을 것이고
그냥 여기에 놓여져 있는 또는 정지해 있어서
도저히 움직이려야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존재자`일뿐이다.
정지한 세계 속에는 어떠한 가치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미술작품은 의미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미술작품을 보는 우리가
시간 속에 있기에 그저 정지해 있는 그 미술작품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만이 이런 `존재자`를 인식하고 의미 지울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생명체 곧 `현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없다면 세계는
그 무엇도 세계와 자연과 우주가 있음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세계와 자연과 우주가 그냥 거기에 놓여져 있어서
그저 삶의 본능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천문학이 말하는 별의 진화 과정을 따라
생성, 성장, 소멸하는 것처럼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이 `시간`이라는 차원 속에서
각자의 뜻대로 무언가에 의미를 지으며
또는 의미를 찾으며 또는 의미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아파트에서 방치된 자전거를 정리하겠다고 공지해 왔었다.
타지 않는 자전거가 3대나 있는데 모두 15년 이상 된 자전거이다.
먼지도 묻었고 바람도 빠졌고 녹도 슬었고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자전거를 꺼내서 먼지를 털고 물티슈로 좀 닦고
자전거 전문점에 가지고 가서 자전거를 수리하면 되는지
아니면 폐기처분해야 되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처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이틀' 뒤에 자전거를 처분할 것이니
어서 자전거를 살펴보라고 방송이 나왔다.
아내에게 타이어 상태가 안 좋으니 타이어를 교체하는 값이
새로 사는 값만큼 할 것이라며 처분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D-1 일이 되었다.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내일 처분하더라도 오늘 자전거 전문점에 가서 물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파트 부근에 자전거 전문점이 있어서
햇빛이 쨍쨍 비추고 땀이 절로 났지만 일단 자전거 한 대만 끌고 갔다.
자전거를 보더니 일단 바람을 넣어보고 한 번 타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멀쩡했다. 하마터면 멀쩡한 자전거를 폐기처분할 뻔한 것이다.
다음 두 번째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자전거는 15년 전에 뒷바퀴에 펑크가 난 상태였다.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타이어는 괜찮아 보이고
튜브만 갈면 될 것 같다고 한다. 앞뒤 두 바퀴에 3만 원이라고 한다.
3만 원에 자전거를 하나 얻은 샘이다.
집에 와서 세 번째 자전거를 꺼냈다.
이 자전거는 15년 전에 멀쩡한 새 자전거였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바람을 넣어 보았다.
바람이 안 빠지고 탱탱하게 그대로 있다.
아니 이럴 수가.
폐기 처분할 3대의 자전거가 D-1일에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되었다.
D-day라는 마지막 날이 있었기에
쓸모없었던 `존재자`가 아주 유익하고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D-day가 있기 때문에
무언가 의미가 `있든 없든` 무언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D-day가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시간이 있기에 이 세계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현존재`로서 세계와 자연과 우주를 규정해 왔다.
그것이 역사로 나타나 있고 계속해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혜택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미지의 땅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개척함으로써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들을 부품처럼 이용하여 문명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무분별한 개발과 비도덕적인 살생과 인간 착취 등으로 인해
문명이 오늘날까지 온 것이고 그 혜택을 우리가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 세계가 곧 자연과 우주가 인간들에게
인간들이 자신들을 불러주어 `꽃`이 되게 해 주어
인간들이 자신들 곧 세계, 자연, 우주를
알아봐 주고 의미 지워줘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인간 너희들이 자신들 곧 세계, 자연, 우주를 이렇게 망가뜨려버리다니
라며 비난을 한다면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할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난을 피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가 직접적으로는
그들을 파괴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파괴에 의한 결과로써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과 세계 곧 자연과 우주가 지금까지 온 것이다.
이제 이 시간 속에서 세계와 자연과 우주와 함께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세계와 자연과 우주가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D-day가 생겨버렸다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면
개인이 해야 할 수준이 아닌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해야 할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알기 위해서 `성장의 경제`가 아닌 `이대로의 경제`를 말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개발이라는 `성장`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성장`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므로
다른 한 가지 대안은
여러 가지 기술과 제도나 법 등은
기성세대에게는 이대로 적용하고 (아니면 조금이라도 줄이든지)
젊은 청년들과 어린 학생들이 시간이 흘러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 우리가 겪는 이런 문제들을 겪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청년들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지만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로 나누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면 당장 돈의 지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혼자 살 때와 다르게 돈의 지출이 많아지기에 말이다.
혹은 자녀의 유무에 따라서도 돈의 지출이 크게 달라지므로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자녀의 유무로 나누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이에 관해서는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해서 그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청년들부터는 우리들이 겪는 문제들을 겪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