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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우 Jan 24. 2024

내 발목을 잡는 너

공황장애

 처음 공황이란 것을 겪었을 때는 이별 직후 9월 달쯤 이었나. 학원에서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습니다. 숨이 가팔라지고 붓을 제대로 못 잡은 채로 아무 놀림도 못하겠는 겁니다. 그래서 화장실로 달려가서 숨을 헐떡인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죠. 그게 아마 징조였는데 그때 병원을 갔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공황은 1번 밖에 오지 않았고 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12월 달, 한예종을 떨어지고 다른 대학을 준비할 때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숨은 다시 가팔라지고 다리는 덜덜 떨렸습니다. 어떤 자세를 해도 편안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상태로 20분 동안 있자 선생님이 다가왔습니다. "민우야 왜 그래?" "저 공황 온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조퇴했습니다. 저는 이번 공황도 한 번 오는 기우라고 생각햇습니다. 허나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공황이 계속 왔습니다. 붓만 잡으면요. 파블로브의 개처럼 띵동 종이 울리면 반응하듯 제 몸은 붓만 잡으면 공황 증상이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병원을 갔고 공황장애 판정을 제 가슴팍에다 받았습니다.

 

 어머니 절 믿어 줘요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저는 제가 밀어 붙인 일들이 부끄러워요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요

  joy division-isolation 발췌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다. 붓을 잡아서 최대한 움직이려고 했죠. 그렇지만 증상은 이제 붓을 넘어 물감통만 열어도 공황이 왔고 그림도 똑바로 못 볼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원래도 우중충한 입시 반의 분위기였지만 그 공기는 절 짓눌렀고 전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거의 기어다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전 1주간 휴가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1주가 지나고 학원에 들어갔을 때, 저는 완전히 무너져 말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119가 왔고 전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대학을 가려고 한 저희 부모님의 돈과 저의 도피성 노력이 물거품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학원을 그만 두고 공황장애 환자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입시생이란 딱지가 떼지고 공황이라는 딱지만 남았죠.

 그때 당시의 저의 공황은 다른 분들에 비하면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꽤 심한 편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늘 공황이 왔고 pc방, 미술관, 노래방 등 폐쇄된 곳은 한 군데도 못 갔습니다. 오죽하면 폐쇄되지 않은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도 공황이 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거의 있었습니다. 새해 맞이로 친구들이 광안리로 놀러갈 때도 저는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집에 있었습니다. 새해 카운트 다운이니, 첫 술이니 그런 건 전 체험도 못한 채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공황장애는 남은 한 해 저를 붇잡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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