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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Nov 13. 2024

[소설 21화] 눈물만큼 불어나는 불안감


뉴스에서는 복귀할 때부터 들려오던 코로나19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감염자들이 점진적으로 증가하자 스카이 면세점에서도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 주면서 착용하라고 했다.
손님에게 상품에 대한 정보를 말로 전달해야 하는 판매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외국인과의 접촉이 많은 직원들에게는 감염을 피하기 위한 마스크 착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식당에서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재빨리 식사를 마친 찬희와 려화는 식당 밖을 나섰다.
마스크가 얼굴을 제대로 덮고 있는지 코와 입 주변을 꽉꽉 눌러보던 려화가 먼저 입을 뗐다.

"지금 중국 뉴스를 봐도 난리 난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아예 한 동네가 다 폐쇄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현수막도 붙어 있대요. 집 밖으로 나가면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대꾸하면 이빨을 뽑아버린다는."


"엄마야, 무시무시하네. 아! 이러다 빨리 좀 끝나야 될 텐데."


"그러게요, 언니. 손님 없으면 매출 또 엉망일 텐데 걱정이 태산이에요."


면세점 직원들, 아니 전 국민들의 염원과는 달리 코로나의 기세는 누그러들기는커녕,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한 때는 점점 늘어나는 중국인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중국어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어로 이야길 할 손님은 커녕 출국하는 내국인, 타 국적 외국인들의 모습조차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매장 내에서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은 상황이 이어지자 시내 면세점에서는 아예 단축 영업을 실시한다고도 하고, 확진자가 한 명씩 나올 때마다 하루 정도씩은 휴점을 한다고도 했다. 본사 직원들 또한 사무실에 나오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고 본사 영업 담당 직원이 알려 주었다.


공항 면세점 또한 상황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금씩 변경하며 직원들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던 차에, 찬희는 매장 내에서는 좀처럼 마주치기 힘들었던 은영을 화장실에 걸어가던 길에 만나게 되었다.


"매장에 손님 하나도 없지? 우리 안내데스크도 조용하기 짝이 없어."
은영이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찬희에게 물었다.

"언니, 이러다 진짜 큰 일 나는 거 아니에요? 참, 언니 딸 요즘 학교도 안 가죠?"

"응, 학교에서 오지 마라고 한대. 화상 수업한다고.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시내 면세점은 단축 근무한다던데, 여기도 아예 문 닫을까 봐 걱정이에요. 그럼 월급도 제대로 못 받을 텐데."

"그러니깐. 혹시나 그렇게 되면 시간도 남아돌 텐데, 난 집에서 자격증 공부나 해볼까 해."

"오! 언니, 무슨 공부하시려고요?"

"어... 그냥 언제 써먹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인중개사나 좀 따볼까 싶어. 이런 상황에서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고. 이렇게 시간 날 때 아니면 또 언제 공부하겠나 싶기도 하고."

"우와, 역시 언니는 대단하세요. 그렇게 나중을 위한 준비까지도 철저하게 하시고. 시험도 엄청 어렵다던데.."


"말만 이렇게 하지. 막상 공부하라면 그게 쉽겠나 싶기도 해. 암튼 더 이상 별일 없으면 좋겠다. 그럼 수고해."

힘 없이 인사를 하고 돌아선 찬희는 은영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고...'

걱정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과는 달리, 찬희는 은영의 미래에 대한 준비성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자격증 공부를 해 볼까 한다고는 했지만 그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신중한 은영의 성격상 어느 정도 공부가 진행되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단축 근무를 하면 어쩌나, 매장 휴업을 하면 어쩌나, 이러다 매장이 아예 폐점을 버해리면 어쩌나, 그런 막연한 두려움 밖에 없었는데, 은영 언니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난 뭐지?'

찬희는 화장실로 가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서후도 아직 어린데...'

그리고는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그 만약을 위해 너는 지금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뭔가 대책이 없을까 하고 골똘하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엄마의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서후가 아침부터 열이 나고 칭얼거려서 해열제 먹여 놓긴 했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소아과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다."

찬희는 만 2세가 되는 올해부터는 서후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했었지만, 코로나가 너무 기승을 부려서 함부로 서후를 집 밖의 장소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어 걱정이 되었다. 그런 찬희의 마음이 엄마에게도 통했는지, 고맙게도 엄마는 집에서 서후를 더 데리고 있겠다고 했고, 그런 와중에 서후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걱정이 된 찬희는 퇴근하기 무섭게 차의 액셀을 밟았다. 정신없이 차를 달려 집에 도착한 찬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대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는 서후가 있는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시 열이 올라 얼굴이 발그스름해진 서후는 찬희를 보자마자 품에 폭 안겼다. 그런 서후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해서 아이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비빈 찬희는, 점점 뜨거워지는 서후를 들쳐 안고는 다시 차를 몰아 소아과로 향했다.

병원 대기실은 아이들과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지만, 엄마 아빠 모두, 아이에 대한 근심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듯했다.

그들 틈에서 밀려오는 외로움을 참을 수 없었던 찬희는, 서후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두 팔로 꼭 껴안아 주었다.
여전히 아이는 몸이 따끈따끈하고, 숨이 고르지 못했다.

'제발 코로나는 아니기를...'


서후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찬희는 혹시나 하는 걱정으로 심장이 요동치는 듯했다.

'설마 아닐 거야.'


이름조차도 꺼내기 싫은 코로나를 떠올리자 몸마저 떨려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순간 간호사의 호명을 듣게 된 찬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품에 꼭 껴안은 서후와 함께 진료실로 걸어간 찬희는 의사를 향해 한 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서후에게 큰 병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싶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서후의 입 안과 목 상태를 체크한 의사는 서후에게 편도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코로나는... 아닌 거겠죠?"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는 찬희에게 의사는 고열도 아니고 아이도 지금 그리 쳐져 있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처방약을 먹으면 좀 나을 거라고 했다. 혹시나 그래도 아이가 힘들어하면 그때 다시 오라고도 했다.

의사의 설명에 안심이 된 찬희는 다시 서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지윤으로부터 알림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부터 면세점 휴점한대."

우려하던 일이 드디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은영의 말로는 면세점이 휴점을 하게 되어도 급여를 아예 받지 못하는, 완전 무급은 아닐 거라고는 했다. 하지만 기존의 정상적인 월급만큼의 돈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찬희는 또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혹시나 휴점을 하게 된다면 바쁘게만 살았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리라 다짐했었다. 쉬어가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서후와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그런 일이 닥치고 보니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휴점을 하게 될지, 다시 복귀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찬희는 다시 걱정으로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열이 아직 떨어지지 않는 서후를 품에 안은 찬희는, 열이 떨어지면서 생긴 땀 때문에 다 젖어 버린 서후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아이의 젖은 머리를 만지자 자신의 눈 또한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눈가를 적시는 눈물만큼 내일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불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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