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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Nov 16. 2024

[소설 22화] 마라탕 집이 가져다준 희망


면세점의 휴업 기간은 다행히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영업 재개를 하고도 코로나19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끝나기는커녕 갈수록 장기화되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업종, 외식업 등이 모두 타격을 입었고, 스카이 면세점에 근무하는 직원들 또한 지쳐가기 시작했다. 손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매장에 하루 종일 멍하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인 상황이 이어지자, 면세점에 입점한 브랜드들 역시 스카이면세점에서 하나둘씩 철수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수익도 나지 않는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회사들로서도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돼 버리자 회사가 정리되기 전에 미리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어떤 직원들은 회사를 다니는 틈틈이 개인 SNS에 짧은 동영상을 올렸더니 조회수가 늘어나서 본격적으로 관련 일을 해보겠다고 떠나기도 했다. 또 솜씨 좋은 어떤 직원들은 미리 배워 놓은 네일 아트 기술을 살려서 일을 시작해 보겠다고도 했다.

모였다 하면 다들 다른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이야기들만 하자, 찬희는 자신은 어찌해야 하나 막연하게 고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심 어린 얼굴로 식당에 앉아 기계처럼 숟가락만 입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던 찬희에게 려화가 말했다.

"언니, 저랑 마라탕 집 하실래요?"

​"뭐? 마라탕 집?"

"네, 요즘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 하면서 식당들도 장사가 안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희 동네 마라탕 집은 웨이팅까지 하면서 사람들이 먹으러 오더라고요."

 "진짜?"

"이봐요, 언니. 이렇게 인스타그램에도 사람들이 사진 엄청 올려놨어요. 맛있겠죠?"

찬희는 려화가 보여준 사진 속 마라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 "


"네, 언니도 서후 키우려면 돈 많이 들어가지 않아요? 우리도 장사 안 된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만은 없고... 만약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뭔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
찬희는 잠시 눈빛이 흔들렸다.

"언니 혹시 생각 있으면 얘기해 줘요. 전 이제 슬슬 알아보러 다닐 거니까."


그렇게 중대한 일을 한 번에 얘기하라니...
그 자리에서 선뜻 대답을 할 수는 없었던 찬회는 머뭇거리며 려화에게 말했다

"에이, 그래도 경험도 없는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아유, 언니! 엄마 뱃속에서부터 경험 갖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살면서 쌓아 가는 거지."

그런 새로운 시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얘기하는 려화와 달리, 찬희는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역시 려화는 외국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답게 생활력이 강하고 억척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에 가서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저렇게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그리고 아직 매장을 접는다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고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날 텐데 굳이 여기를 벗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접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매장이 정리되지 않기만 마음속으로 빌어야지. 설사 정리된다 해도 그 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뭐.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가, 괜히 망하기라도 하면 서후랑 살아갈 일도 막막할 거고'

찬희는 려화의 제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을 위해 지금 뭔가 준비를 하긴 해야 될 텐데, 나같이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도대체 뭘...'

찬희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두들 자신과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은영 언니도, 려화도.

점심을 먹고 매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카이 면세점 직영 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났기에 얼른 매장으로 돌아가서 수현에게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언니, 저 앞에서 직영들이 뭔가 심각한 얘기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왜 그런데요?"

상품 정리를 하던 수현이 잠시 멈춰 서서 찬희에게 대답했다.

"직영들도 지금 분위기가 심상찮은 가 봐. 이때까지 그런 적 없었는데, 이번에 희망퇴직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도나 보던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회의에서 얘기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아, 정말요? 매출이 엉망 되니까 스카이 면세점도 별도리가 없나 보네요. 희망퇴직 같은 걸 다 받고."

"그러게 말이야. 이제 어디든 안심하고 붙어 있을 데가 없어. 우리 회사도 언제 매장 정리한다는 연락 올 지 알 수 없고... 딴 데 어디 사람 구하는 곳도 없는데 진짜 큰일이다."

"맞아요, 언니.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인생이 꼬일 줄 몰랐어요."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안은 얼굴을 한 체 퇴근한 찬희는 집에 도착해서 서후가 놀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들어 책 만지는 것에 흥미를 느낀 서후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그러다 서후는 책 사이에 꽂혀 있던 자신의 오래된 일기장을 만지작 거렸다.

"서후야, 잠깐만. 그거 엄마 일기장이네. 우리 같이 볼까?"

간단한 단어는 곧잘 말하는 서후는 엄마의 말을 따라 했다.

"일... 기... 장... 엄마 꺼."

찬희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서후야. 이거 엄마 일기장이야. 우리 서후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엄마가 썼던 일기장."

서후를 자신의 무릎에 앉힌 찬희는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일기장에는 자신이 언젠가는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리스트들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음... 일본어 배우기, 한 달에 책 20권 읽기, 책 쓰기, 한 달간 외국 일주하기..."

무심코 써놓았던 희망 사항들이었지만, 그중 일본어 배우기는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에 책 20권 읽기나, 책 쓰기, 한 달간 외국 일주하기 같은 일들은 이제 시도조차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 살기에도 바쁘다 보니, 예전 같은 열정이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꿈꾸던 나의 희망과 자신감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서후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찬희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느샌가 작은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시작해 볼까.'

거침없는 려화가 제안하던 마라탕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예전에 써 놓은 이 리스트 중 하나 정도는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 찬희는, 동화책을 보다 잠들어 버린 서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후가 읽던 동화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고 자신이 읽을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창문 밖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멈춰 버린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희미한 불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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