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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Nov 20. 2024

[소설 24화] 텅 빈 쇼케이스와 텅 빈 마음


찬희는 새벽 출근길 내내 차창 너머로 스쳐 가는 어두운 풍경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매일 출근길에 제발 이 날이 오지 않기를 얼마나 바랐는지를 떠올리자, 창밖의 날씨처럼 마음 한 구석이 얼어붙어 버렸다. 하지만 결국엔 오고야 말았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스카이면세점에서의 마지막 그날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창 밖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은 여전히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교대로 근무를 해야 했던 탓에, 직원 3명이 모두 매장으로 출근하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새벽 출근자였던 찬희가 오전 근무를 마치자, 오후 출근자였던 지윤과 막내 직원 보람이 출근했다. 오랜만에 전 직원이 모였다는 반가움도 잠시, 세 사람은 남은 시간을 담담하게 보내며 그날의 근무를 마쳤다.

코로나 발생 이후로도 2년 이상을 버텨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막상 그날이 오고 보니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던 세 사람은, 영업시간이 종료되자마자 쇼케이스에 들어 있던 상품들을 전부 꺼내 놓았다. 그리고는 상품들을 포장용 에어캡으로 하나하나 포장해서 택배 박스에 나누어 담았다. 이로써 매장 정리는 전부 마무리되었다.


찬희는 상품들이 다 빠져 있는 텅 빈 매장을 둘러보다 면세점에서의 첫 근무일이 생각나 고개를 떨구었다.

대학 졸업 직전, 아르바이트로 들어와서 어리바리했던 첫 근무날, 오르르 몰려오던 손님들이 너무 무서웠던 찬희는 그만 손과 입이 얼어붙어 버렸다. 지윤이 신혼여행 가는 젊은 부부를 능숙하게 응대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찬희는 덜덜 떨며 말했다.

"매니저님 없이 제가 혼자서 이 일들을 다 해낼 수 있을까요?'

지윤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찬희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찬희야, 누구나 첨엔 다 힘들지. 나도 처음엔 엄청 버벅댔어. 근데 계속하다 보면 바로 익숙해져서 너도 모르게 금방 척척 해 낼 걸?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알겠지?"

지윤의 자상한 격려 한마디에 찬희는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기억하며 힘들어도 12년을 버텨왔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버려질 줄이야.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매장을 정리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모든 일들을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는 상황은 정말 수긍하기가 힘들었다.


12년 간 자신의 손길이 묻어 있던 쇼케이스를 만지작거리던 찬희는, 그 속에 담겨 있던 매장에서의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매장에서 날리는 먼지처럼 그 기억들도 이내 멀리 사라져 버렸다.

순간, 매장 리뉴얼 준비로 퇴근이 많이 늦어진 날 진우가 자신을 데리러 왔던 그때도 떠올랐다.

일이 언제 마무리가 될지 몰라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던 진우였지만,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퇴근이 늦어진 찬희의 몸 상태를 걱정만 하던 그였다. 한참 늦은 퇴근이라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진우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찬희는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러 오는 길에 진우가 사들고 온 유자차는 이미 식어 있었지만, 달콤한 향이 찬희의 지쳐버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르르 녹여 주었다. 진우와 함께 한 그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외로움과 텅 비어 버린 마음을 달래 줄 진우마저 없다는 생각에 찬희의 가슴은 그날의 유자차처럼 식어 버렸다.

'오빠가 옆에 있었다 해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진우와 함께였다면 그까짓 퇴사가 대수였겠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 서후의 미래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실업자 신세가 찬희에게는 한탄스럽기만 했다.

'더 열심히 했다면 더 잘 풀릴 수는 있었던 걸까?'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몹쓸 병이 몰고 간 어쩔 수 없는 이 막막한 현실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었을까.


​정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매장과도 마지막이 된 이 날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막내 보람이 지윤과 찬희를 보며 말했다.

"제가 자주 가는 술집이 있는데 거기 같이 가실래요? 시간은 늦었지만..."

"그래, 가자. 오늘은 내가 살게."


지윤의 답변에 세 사람은 찬희의 차를 타고 술집으로 향했다.

창 밖의 가로등 불빛은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지만, 찬희의 마음은 허탈감에 사로잡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찬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도로 위를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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