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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Nov 18. 2024

[소설 23화]오천만원 짜리 인생


스카이 면세점 직영 사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퇴직에 대한 테이블이 구체적으로 나왔다는 얘기들이 매장에 나돌기 시작했다.​

매니저인 지윤이 들은 바로는 역시 대기업답게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파격적인 조건이 나왔다고 했다.

"아... 그거라도 받고 나가는 사람들은 좋겠어요. 그래도 몇 달은 안심하고 다른 일자리 찾아볼 수 있을 거 아녜요."

근심에 가득 찬 얼굴의 찬희가 지윤을 보며 말했다.

"직영들은 그런 지원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제발 코로나 좀 끝나서 매장 접는다는 말만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직영 사원들 사이에서는 좋은 조건이 나왔을 때 빨리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편이 낫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혹시라도 희망 퇴직자들을 추가로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혜택이 훨씬 더 줄어들 거라는 말까지도 들려왔다. 특히 근무 연차별로 희망퇴직 지원금이 다르기 때문에 근무연수가 오래된 직원들에게는 더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고들 했다.

찬희는 연차가 오래되어 더 많은 퇴직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은영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오며 가며 한 번쯤 마주치게 된다면 은영에게 꼭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퇴근길에 저만치 앞서가던 은영을 보게 되었다.

"은영 언니!"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찬희를 은영이 반갑게 맞으면서 자리에서 잠시 멈춰 기다렸다.

"어, 찬희야. 너희 회사는 아직 별 말 없지."

"네. 언니네는 희망퇴직 테이블 나왔다면서요."

"어, 너도 소문 들었구나?"

"네. 언니는 그만 둘 생각은 없는 거죠? 하린이 대학 학자금도 아직 한 번도 못 받았잖아요. 그런 복지도 무시 못 할 텐데."

​가만히 서서 찬희의 말을 듣기만 하는 은영을 보며 찬희가 질문을 이어갔다.

"내년에 하린이 대학 입학하게 되면 졸업할 때까지는 더 다니실 거죠?"

입을 꾹 다물고만 있던 은영이 찬희를 보며 말했다.

"아. 너 그 얘기까지는 아직 못 들었나 보구나. 이번 희망 퇴직자들한테는 대학 학자금 3년 치까지도 지급해 줄거래. 그래서 사실 나도 고민이긴 해."

그건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찬희는 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진짜요? 그래도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다니는 게 낫지 않아요? 어차피 강제로 나가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의무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근무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에게 회사에서 좀 더 압박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나도 사실 얼마 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거든. 그걸로 일을 좀 시작해 볼까 싶기도 해."


"어머, 언니 언제 공인중개사 땄어요? 그때 공부 시작할까 한다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했었는데, 벌써 시험에 합격한 거였어요? 언니는 진짜 대단하세요."

"응, 면세점이 너무 뒤숭숭해서 생각은 많고,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은 없고 해서 하린이 학교 갔다 돌아올 때까지 공부 좀 했어. 하린이 오면 같이 공부하기도 했고."

아무리 시간이 많다고 했어도 회사 분위기가 좋은 않은 상황에서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은영이 찬희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 스카이 면세점의 부점장인 은영의 남편이 생각난 찬희는 은영에게 다시 물었다.

"언니, 그래도 부점장님은 퇴사 안 하시는 거죠? 회사가 다시 정상화되면 점장님으로도 승진하셔야 되잖아요."

​"음, 사실 하린 아빠는 나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먼저 땄었어. 그래서 쉬는 날에는 아는 동생 부동산에 가서 계속 무보수로 일 배우고 있었고. 하린 아빠는 이제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어서 그만두고 같이 부동산 차릴까 싶기도 해."

코로나 때문에 스카이 면세점이 힘들다고는 했었어도 부점장까지도 퇴사를 생각할 만큼 심각한 상황인가 싶어 찬희는 은영의 말에 깜짝 놀랐지만, 부부가 같이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직원용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각자의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어 집으로 가는 길에 찬희는 은영 부부가 한 마음으로 앞날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부러워졌다.

'역시 저 사람들은 퇴사 이후 준비도 다 되어 있었구나.'

직영 사원들의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이 지나자, 예상보다 많은 인원들이 지원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저렇게 해서 스카이면세점이 제대로 운영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다.

이런 소식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찬희의 본사에서는 아직 매장 철수를 하지 않는 것이 찬희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을 추구해야만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결론지었는지, 그로부터 6개월 후 본사 영업 담당으로부터 매장으로 전화가 와서 매니저인 지윤을 찾았다.

웬만한 전달 사항은 근무 연수가 오래된 찬희에게도 해줄 텐데, 다짜고짜 지윤을 먼저 찾는 것에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찬희는 얼른 지윤에게 본사로 연락해 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매장으로 돌아온 지윤이, 목이 빠져라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던 찬희에게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사에서 우리 매장 정리할 거래. 이번달 말까지만 하고."

"아... 정말요?"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퇴직 위로금 한 푼 없는 퇴사. 끝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에 손실액이 너무 커져 버린 회사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직원들의 퇴직금 말고는 챙겨줄 수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큰돈을 받고 퇴사했던 직영들과는 달리, 찬희는 회사로부터 맨손으로 내쫓겨 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달 말일이 지나고 나면 이제 무일푼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껏해야 12년 일해서 받는 5,000만 원도 안되는 퇴직금만 남는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서글퍼진 찬희는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것에 대한 대가가 고작 이거 밖에 없는 건가?'

찬희는 누구보다 열심히 죽도록 일만 해왔다 생각했는데 자신은 고작 5,000만 원짜리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우가 떠나기 전에도, 떠난 이후에도 어떡해서든 서후와 잘 살아보기 위해 몸부림쳤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 밖에 없다는 생각에 찬희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코로나가 끝난 뒤 다시 상황이 좋아져서 매장을 재오픈하게 되면 회사에서 무조건 세 사람을 부르겠다 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회사의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 기약도 할 수 없었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찬희의 마음을 더욱 찢어 놓았다.

하지만 찬희는 문득, 이미 퇴사를 해서 스카이 면세점에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은영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나도 더 이상 뭔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돼. 서후와 내가 살 길을 찾아야만 해. 분명 어딘가엔 있을 거야. 그 길이.'

찬희는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다시 한번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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