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연재 중
50실명 앞에서 베스트셀러를꿈꾸다
18화
실행
신고
라이킷
18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U찬스
Dec 17. 2024
실명 앞에서 만난 교수님
2022년 12월, P대학병원 안과에서
'망막색소변성증'
이라는 안과질환을 진단받았다.
우연히 들린 동네 안과에서 황반부종이 있으니 P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었고, 나는 그 서류를 들고 대학병원 안과로 향했다.
다양한 검사와 증상을 통해서 대학병원 교수님은 내게 시야가 점점
좁아지면서 실명에 이른다는
'망막색소변성증'
을 진단해 주었다. 사람에 따라 진행 속도는 다르지만, 점차 병이 진행되는 진행성 망막질환이라고 했다.
믿을 수 없는 병명에 충격을 받은 나에게 교수님은 진행 속도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 진단 후, 6개월 이후에 다시 정기검진을 하자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6개월 후에도, 12개월 후인 2023년 12월에도, 시야에 큰 변화는 없었다. 2024년 12월에 다시 만나 검사를 하자는 친절한 교수님의 안내를 들으며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러던 2024년 4월의 어느 날, 한 대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라서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혹시나 하고 받은 전화에서는 의외의 말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2024년 12월에 진료 예약하셨죠? 담당 교수님이 그만두셔서 예약 취소하시라고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나는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교수님이 그만두셨다고요? 그럼 정기검진은 어떻게 해요?
검사는
대학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기분이 언짢아진 나의 목소리에 간호사는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고, 다른 안과 병원을 통해서 정기검진을 하라는 답변을 남겨 주었다.
워낙 환자가 많이 몰리는 대학병원인지라 그 번잡함이 싫긴 했었지만, 바쁜 와중에도 환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신 교수님이
고마워서
기꺼이 방문해야 한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분이 갑자기 대학병원을 그만두셨다고 하니, 약간 짜증스럽기도 했다.
'왜 그만둔 거야? 그럼 이직한 병원이나 알려 주던가!'
그만뒀다면 당연히 개인 안과라도 개업하실 거라 믿었지만, 간호사에게 그런 안내는 들을 수 없어서 그냥 포기한 체 다른 안과나 찾아보자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12월, 안과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던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제일 처음 소견서를 써주었던 동네 안과를 다시 방문했다. 다른 대학병원에라도 가야 할 테니 또 소견서를 받을까 해서였다.
접수 후 진료실로 향한 나는 원장님께 말했다.
"지난번에 추천해 주신 대학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았거든요. 정기 검진해야 한다는데, 교수님이 그만두셔서 어떡할까 해서 왔어요."
그러자 안과 원장님은 내게 안타까움을 표한 후, 내 귀를 의심할 답변을 주셨다.
"아... 그 병이라고 하던가요... 그런데 K교수님 돌아가셨어요. 올해 3월에..."
잘못 들었나 싶어,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던 나에게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그분한테 더 이상 진료는 못 받을 테지만, 여기에서도 정기검진은 받을 수 있습니다."
가까운 동네 안과에서도 매번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교수님의 부고는 병 진단 당시의 충격만큼이나 깊게 다가왔다.
'내 눈을 먼저 걱정해 주시던 분이 나보다 먼저 가실 줄이야... 나이도 나보다 더 젊어 보이던 데...'
혹시나 하고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 보니, 사인은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과로사였다. 병 진단 이후,
'이제 좋은 것만 봐야지'
라고 결심한 후로 뉴스를 제대로 안 봤더니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른 환자들에게도 친절을 베푸셨는지, 안타까워하는 글들이 많았다.
"저에게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정말 존경하는 분이라 맘이 아픕니다."
"초등 자녀가 있다네요."
"덕분에 실명하지 않고 세상을 보는데..."
좋은 글 일색이었다. 세상을 떠난 이후에 저런 칭찬만 듣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인생을 참 잘 사셨던 분이다 싶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저렇게 안타까워하며 멋지게 살았다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싫은 일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때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약간 두렵기도 했다.
'남의 눈 의식하며 살지는
말자'
라고 결심하며 살아온 나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욕을 들을 정도로 인생을 막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하루를 살더라도 좀 더 알차고, 가치 있게
살아가야겠다
.
그리고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나보다는 항상 남을 더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늦었지만, K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keyword
안과질환
안과
실명
Brunch Book
화, 목
연재
연재
50실명 앞에서 베스트셀러를꿈꾸다
16
들린다면, 그대를 향한 내 노래가
17
크리에이티브는 작은 습관에서부터
18
실명 앞에서 만난 교수님
최신글
19
빚이 아닌 빛으로 가득한 인생
20
20화가 곧 발행될 예정입니다.
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발행 예정
전체 목차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