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찾기 위해 면세품 인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출발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벤치로 뛰어가는 사람들, 면세점에서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 모두들 제 갈 길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명절 전이라 해외여행 가는 사람이 많긴 많구나.'
예상은 했었지만 면세점을 포함해서 공항 전체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일 줄은 몰랐다.
이윽고 면세점 안을 유유히 돌아다니던 한 중년 여성이 찬희의 매장으로 다가와 행거에 걸려 있는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오! 이거 예쁘네."
"안녕하세요. 고객님. 직접 쓰시는 거면 한 번 착용해 보시겠어요?"
찬희는 손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스카프를 목에 둘러봐 주었다.
"색깔도 예쁘고 촉감도 참 좋네. 우리 아들한테 사달라고 해야겠다."
"아드님도 같이 출국하시나 봐요. 고객님."
"아니, 아니고. 우리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 공부 마치고 지금 뉴욕에서 일하고 있거든. 명절이라 외국에서 고생하는 아들 보러 오늘 가는 거예요."
"어머! 아드님이 공부 잘하셨나 보네요. 미국 가서 박사 공부도 하시고."
"응. 내가 좀 시키기는 했는데, 그래도 군말 없이 잘 따라주더라고요. 오! 근데 이것도 예쁘네"
그렇게 손님은 스카프란 스카프는 죄다 착용해 보고, 온갖 상품들을 다 만져보았다. 상품을 구경하는 동안에도 손님의 아들 자랑은 끝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전교 회장을 했다는 둥, 키도 크고 인물도 좋아서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한 트럭은 될 거라는 둥. 하도 듣다 보니 그 아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맞은편 브랜드 상품에 눈길이 갔는지, "다음에 아들에게 사달라고 해야겠네."라는 말을 남기고는 손님은 매장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손님이 나간 뒤 쇼케이스 위에는 이것저것 매어 보았다가 내려놓은 스카프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찬희는 '저 많은 상품들을 원래 모습으로 디스플레이하려면 손이 좀 가겠다.'싶었다.
하지만 다음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노련하고 빠른 솜씨로 스카프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하도 많이 보시길래 하나라도 사실 줄 알았더니, 아들 자랑만 실컷 하고 가셨네. 하긴 뭐 나도 그런 아들 있으면 어디 가서 자랑하고 싶긴 하겠다.'
예전 같았다면 그런 손님이 왔다 갔을 때 "도대체 쇼핑하러 온 거야, 자식 자랑하러 온 거야."라며 툴툴거리면서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냈을 터였다.
상품 판매 첫 개시도 하기 전에 온 진상 손님 때문에오전 내도록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샌가 달라진 자신의 태도를 보며 찬희는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상대방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 것이다.
찬희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폰을 꺼내어 바탕 화면에 있는 서후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도 그 입장이 되고 보니 마음을 더 알아차릴 수 있겠구나.'
찬희는 아이를 낳은 후 생긴, 이제 이런 일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진심 어린 공감 능력에 스스로뿌듯해하며,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