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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Oct 16. 2024

[소설 2화] 차라리 귀신이 낫다


직장에 가기 위해 공항행 버스를 타려면, 집 앞에 있는 왕복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집에서 버스 정류소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인적이 드문 적막한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가끔 등골이 오싹해졌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건널목을 건너며 찬희는 생각했다.

'사람 한 명이라도 보이면 좋겠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이... 특별한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어두운 새벽에 사람들이 다닐 리가 없지.'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누가 따라오는지 궁금해서, 몸을 홱 돌려서 한 번 쳐다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돌아보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여길 것만 같았다.
찬희는 몸을 약간 틀어 15도 정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체격이 꽤 커 보이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새벽녘 희미한 불빛 속에서 다가오는 남자의 모습은, 약한 여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압감을 느낄 만했다.

걸음이 빠른 남자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찬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느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심장 박동 소리가 귀를 때렸다.
찬희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손에 꽉 쥐고, 거의 뛰다시피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남자는 찬희가 가는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찬희는 어두운 새벽길에서는 차라리 사람보다 귀신이 나오는  덜 무섭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차라리 귀신이 더 나은 거였네.'

그렇게 놀란 가슴을 겨우 달래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는 매서운 바람만이 찬희를 반기고 있었다. 


남편은 주말에 쉬는 날이면 자신의 차를 몰아서 새벽에 출근하는 찬희를 회사까지 데려다주었다. 퇴근할 때에도 회사 앞에서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찬희를 집까지 편안하게 데리고 갔다.

오늘 같이 마음이 불안한 날도 진우가 회사까지 데려다준다면 안심이지만 출근해야 하는 진우에게 그런 부탁까지 할 수는 없었다. 가끔은 집에서 푹 쉬어야 하는 진우가 주말마다 출퇴근을 시켜주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찬희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 운전이라도 할 줄 알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운전대 잡는 게 힘든 걸까.."

면허를 딴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장롱 속에 잠들어 있는 면허증은 여전히 쓸모가 없었다.
오늘따라 바람은 어제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졌고, 버스는 유독 더디게 오는 것만 같았다.
집에서 나온 지 겨우 10분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몸은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건 몸만이 아니었다.

새벽녘에 서후와 실랑이를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정신마저도 몽롱하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몸과 마음이 무거워진 찬희는 언제까지 이런 고된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더욱 아찔해졌다. 어두운 새벽 출근길도,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육아도 생각하면 할수록 차가운 폭포처럼 다가오는 듯해 찬희는 오들오들 떨면서 검은색 롱패딩의 옷깃을 여미고는, 손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윽고 자신보다 조금 더 늦게 버스가 도착하자, 찬희는 잽싸게 버스에 올라탔고 빈 좌석에 앉아 몸을 반쯤 눕혔다.
버스 벽에 달린 송풍구에서 나오는 훈훈한 바람 덕분에 몸은 금세 노곤해졌고, 눈을 감으면 금방 잠들 것만 같았다. 억지로 눈을 크게 뜨고 잠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냥 잠깐 눈만 붙이자'라고 생각한 순간, 찬희의 눈은 무겁게 감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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