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항공사에서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방송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들리는지 마는지 면세점 매장 안을 어슬렁거리던 한 손님이 천천히 찬희의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비행기 탑승 직전에 급히 쇼핑하는 사람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찬희의 설명에도 어떤 걸 골라야 할지 결정을 못 해 한참을 망설이던 손님은 그제야 방송이 들렸는지 갑자기 그때부터 빨리 계산해 달라고, 물건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찬희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리 손에 익은 일이었지만 자칫하면 실수할 수가 있어서 POS기에 여권번호와 출국 시간을 정확하게 입력한 후, 계산을 마치고 손님에게 상품을 내밀었다.
"고객님, 상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지금 확인할 시간이 없다며, 물건이 들어 있는 박스를 거의 뺏듯이 가져가더니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발도 보이지 않을 속도로 급히 탑승구로 달려갔다.
손님을 보내고 나니 찬희는 이미 혼이 쏙 빠진 듯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상품 보관 서랍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계산한 상품과 손님이 가져간 상품이 다른 것이었다. 컬러별로 상품 번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계산한 컬러의 상품과 손님에게 인도하는 상품이 일치해야 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하필이면 계산한 컬러와는 다른, 심지어는 금액까지도 다른 상품을 손님에게 인도하고 만 것이었다.
면세점의 특성상 교환과 환불이 쉽지 않아서 손님을 찾아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맞는 컬러로 다시 교환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찬희는 손님이 비행기를 타는 10번 탑승구로 불이 나게 달려갔다. 10번 탑승구는 면세점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찬희는 서후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안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출산 이후 아이에게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어운동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찬희에게 고속 질주란 건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젖 먹던 힘까지 겨우 끌어모아 10번 탑승구까지 뛰느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신물이 식도까지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10번 탑승구에 도착한 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저만치 서있는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이 많아서 손님은 대기줄 끝에 서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희는 숨을 헐떡이며 손님에게 말했다.
"고객님! 죄송한데요, 아까 구매하신 상품 컬러가 바뀌었더라고요. 한 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앗! 그런가 보네요."
손님은 멈칫하며 케이스 뚜껑을 열어 상품의 색깔을 확인했다. 자신이 선택한 색깔과 다른 상품이라는 것을 확인한 손님에게 찬희가 말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급하게 하다 보니 약간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비행기 타기 전에 해결돼서 다행이네요. 어찌 용케 잘 찾아오시고. 하하."
원래의 상품을 받아둔 손님은 앞사람을 따라 서둘러 탑승구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찬희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안심하고 있는 자신에게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정신 바짝 안 차리면 큰일 난다. 윤찬희!'
서후를 낳은 이후로 자신도 모르게 가끔 이런 실수가 생기고는 했다. 하지만 일이 터진 후에 걱정하면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뛰다 보니 어떻게든 일이 풀려 나갔다.
'그래, 이러면서 더 배워가는 거지 뭐.'
일이 해결되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찬희는 매장에 돌아가기 위해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