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 오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지는 거였다. 게이트로 뛰어가기 전에도 옆 브랜드인 수현 언니에게 잠시 매장을 맡겼었는데, 또다시 언니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오후 근무자가 출근하는 12시 반 전에는 화장실 한번 마음 놓고 가기가 힘들다. 판매 직원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매출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몰리는 아침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야 본사에서 정해놓은 매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자신이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더욱 자부심이 생겼다. 그래서 화장실은 참을 만큼 참았다가 비행기 탑승이 비는 시간에 잠시 다녀오곤 했다.
고등학생 아이의 엄마인 옆 브랜드 수현 언니는 업무 처리가 깔끔해 언니에게는 믿고 매장을 맡길 수가 있었다.
언니는 아이의 양육에도 신경을 많이 쓴 덕분인지, 하나뿐인 아들은 그 어렵다는 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전교 1등으로 들아갔다는데, 이제 2학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조기졸업도 따놓은 당상이라고 했다. 과학고는 2학년 때 조기 졸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3학년을 건너뛰고 바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데, 아이는 졸업 후 카이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둔 수현 언니를 볼 때마다 찬희는 내심 부러웠다.
'우리 서후도 커서 수현 언니 아들처럼 공부 좀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수현 언니에게 한 번씩 아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고 물어볼 때면, 언니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뭐, 특별히 한 건 없어."
다만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주말에도 출근하고 집에 잘 없다 보니, 아빠가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항상 책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책에 재미를 붙인 아들은 이해력과 어휘력이 풍부해져서 실없는 우스갯소리도 자주 한다고 했다.
어제도 전화로 "냉장고에 재워 놓은 고기 구워 먹어"했더니 "그럼 깨우면 돼?"라고 했다면서 말로는 절대 감당이 안 되는 애라고 수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아들은 학년이 오를수록 성적도 크게 올랐다고 했다.
'음... 역시 책 덕분이었어.'
수현 언니의 아들 자랑을 들을 때마다 찬희는 집에 가서 진우에게 늘 신신당부했다.
"서후 좀 더 크면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면서 책 많이 읽어 줘."라고 말이다.
진우가 서후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모습을 찬희는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다.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꼬마 아기는 넘어질까 두려워, 작고 귀여운 자신의 오른손으로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아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꼭 붙잡을 것이다. 그러면 아빠는 그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워 아기의 손을 꼭 잡아주겠지.
찬희는두 부자가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코끝이 찡긋해지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마무리하고 나니 오후 근무자이자, 매장 매니저인 지윤이 출근했다.
지윤에게는 7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남편과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신혼집을 마련한 지윤을,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었다. 그러다 남편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울분을 이기지 못한 남편은 매일 술에 의지했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되면서 급기야는 임신 7개월 차의 지윤에게까지 손찌검을 했다.
지윤은 그걸 피해 밤새도록 길거리를 헤매며 도망쳐야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행동과 말이 어눌했다. 이를 이상하기 여긴 지윤이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해 보니,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했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남편은 집에 제대로 들어오는 날이 없었고, 지윤이 돌봄 서비스를 써 가며 거의 독박으로 아이를 키우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워낙 밝은 모습의 지윤은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업무에 임했지만, 이제 갓 아이를 키우는 찬희의 입장에서는 그 인내와 고통의 세월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