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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Oct 21. 2024

[소설 8화] 사라진 비행기


지윤과 인수인계를 한 찬희는 점심 식사를 위해 밥 짝지인 조선족 려화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스카이 면세점 직영 사원인 은영 언니와 마주쳤다. 은영언니는 찬희의 친언니인 선희의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그리고 스카이 면세점직영 사원 이면서, 남편과는 사내부부라서 찬희가 세상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했다.


"어머, 언니. 오랜만이에요. 지금 출근하시는 거예요?"

찬희가 은영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 찬희야. 지금 식사 가는 거야?"

"네, 언니."

"같은 매장 안에 있으면서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드네. 안내데스크 가니까 일이 많아서.. 다음에 점심 같이 먹자."


2년에 한 번 정도 스카이 면세점 직영 사원들은 코너 이동이 있었는데, 은영은 이번에 안내데스크로 로테이션되었다. 컴플레인 담당을 하다 보니 업무도 많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도 많을 듯했다.


' 그래도 언니는 직영이라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 찬희는 은영 언니와 다음 식사를 기약하며 려화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식권도 한 달 근무 일수만큼은 면세점에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식권의 수량도 줄어들었다.
면세점 전체 매출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가, 공항 공사에 내야 하는 임대료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러니 직원들을 위한 복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면세점 직영 사원들이야 대기업 소속이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야 없었겠지만, 업체 소속의 파견 직원들에게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근무 조건이었다.

식권 1장으로도 금액이 모자라서 본인의 돈을 추가로 지불한 식사를 마치고 찬희와 려화는 벤치로 향했다.



매번 사 먹는 커피 값이 아까워서 종이컵에 타 온 커피믹스를 마시면서 려화가 능숙한 한국어로 말했다.


"언니, '미국이 싫어'를 영어로 뭐라 하는지 알아요?"

"어.. 몰라. 뭔데?"

"아메리카노"

"야! 뭐야!"

찬희는 피식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자 려화가 뭔가 기억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찬희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참! 언니, 혹시 주연 언니 알아요?"

"누구? 주연 언니?"

"네. 왜 그 브리마 코너에서 일하던 주연 언니 있잖아요"

"아! 그 작고 빠짝 말랐던 언니! 그 언니 면세점 관둔 지 좀 됐잖아. 근데 그 언니는 왜?"

"예전에 주연 언니랑 같이 일했던 혜지한테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왔더라고요.. 혹시 장례식장 같이 갈 수 있냐고."

"엥? 누구 장례식장엘?"

"주연 언니 장례식장요."

"어머! 어머! 그 언니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잖아. 무슨 일이래! 사고로?"

"아뇨. 암이래요."

"아이고.. 아직 한창나이인 사람이 암으로 가시다니.. 너무 안 됐네.."

"그쵸? 주연 언니 그때 회사 그만둔 것도 암 진단을 받고는, 수술하고 치료에 전념하려고 그랬나 보더라고요."

"에휴.. 불쌍해라.. 요즘엔 젊은 사람도 참 암에 많이 걸리네. 2년인가 3년 전엔 시호도 암으로 세상 떴잖아."

"그러게요. 몸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요."


두 사람은 창 밖을 바라보며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창 밖에서는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륙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비행기를 보자 그제야 찬희는 새벽녘에 꾸었던 꿈이 다시금 떠올랐다.


"맞다! 나 새벽녘에 진짜 이상한 꿈 꿨어."

"뭔데요, 언니?"


꿈에서 남편은 행선지도 알 수 있는 비행기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남편이 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찬희는 활주로를 헤치고 뛰어가서 남편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무표정하게 손을 한 번 흔들고는 비행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비행기 또한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남편과 손 한 번 잡을 수 없었던 찬희는 목놓아 남편을 불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목소리가 전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여... 여어..."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번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여어... 여... 보! 잠깐만!!!"

꿈을 떠올릴수록 찬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꿈에서 차나 비행기 같은 건 함부로 타는 게 아니라고 려화가 말했다.

'오빠는 왜 그런 걸 함부로 타 가지고 사람 걱정하게 만드는 거야.'

3살 터울의 남편과 연애 5년, 결혼 6년째를 맞이하는 동안 가끔은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커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싸움에 불과했다.


지난 10년 동안 찬희에게 남편은 언제나 즐거움과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결혼 5년 만에 생긴 아이 키우는 데에 정신이 팔려 두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조차도 없었다.

'에잇! 안 꿨다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리자.'

애써 생각을 지우려고 찬희는 집에서 엄마만 기다리고 있을 서후의 사랑스러운 얼굴만 연신 떠올렸다.

서후를 생각하니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근무까지 끝낸 찬희는 곧바로 서후와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배차 간격이 긴 공항버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찬희를 싣기 위해 공항 정류소에 도착했다. 그렇게 찬희를 태운 버스는 찬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앞 버스 정류소에 찬희를 내려 주었다.

출퇴근 시 어두운 시간에 버스정류소까지 가는 게 항상 불안했던 찬희는 남편과 상의해서 버스정류소와 가까운 아파트만 고르고 또 골랐다.

그래서 이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 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항상 대중교통을 타야 하는 뚜벅이족에게는 버스 정류소 가까이 사는 게 최고였다. 어차피 직장이 지하철권도 아니어서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곳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거실로 향하니 거실 장식 콘솔 위에 놓인 비행기 모형이 눈에 확 들어왔다. 비행기 프라모델을 좋아하는 남편이 직접 만들어서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잊어버리려 애썼던 꿈이 불현듯 떠올라 찬희는 자신도 모르게 비행기를 번쩍 집어 들었다.
비행기 모형과 남편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순간 마음이 불안해진 찬희는 콘솔의 서랍을 열어 깊숙한 곳으로 비행기를 숨겨버렸다.

퇴근한 남편은 비행기 모형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찾지 않고 씻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오늘도 엄청 피곤했나 보네'

요즘따라 부쩍 살도 빠지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어하던 남편이었다.

내일도 새벽 근무를 할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던 찬희는, 남편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일찌감치 남편 옆에 같이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다 쓰지도 않은 일기장을 덮었다.

'서후가 깨기 전에 얼른 잠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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