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찬스 Oct 23. 2024

[소설 9화] 남겨진 가족들


4일 뒤 설날 새벽, 찬희는 서후를 데리고 진우와 함께 시댁으로 향했다.

설날 전날 퇴근 후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을 도우려고 했지만, 손윗 동서인 민정이 피곤한데 굳이 안 와도 된다고 찬희에게 말해 주었다. 대신 설날 아침에 일찍 와서 나물거리나 만들라고 했다.

설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시어머니가 안 계신 시댁에서 제사와 명절을 책임지고 있는 형님이 고맙게 느껴졌다.

교대 근무 탓에 제사 때에는 쉬는 날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퇴근 후 시댁에 가면 이미 새벽 근무에 지쳐있을 아랫 동서를 위해 음식 준비를 다 해놓았던 민정이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서 나물 만들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주방에서는 거의 설거지 밖에 하지 않는 찬희에게는 나물 만드는 것조차도 하나의 큰 일이었다.

음식 만드는 것도 기술이라 자주 해버릇 해야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친정 엄마의 도움이 있었다.

서후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친정 엄마에게서 반찬을 공수해 왔고, 서후가 태어난 지금은 서후를 봐주시기 위해 친정 엄마가 집에 거의 와 계셨다.

시어머니가 안 계시니 서후를 맡길 데라고는 친정 엄마 밖에 없었다.

큰돈도 되지 않는 육아 휴직 수당을 받을 바에야 온전한 월급을 받아서, 벌이가 없는 엄마에게 아이 봐주시는 용돈으로 드리는 거 더 낫겠다 싶었다.


음식 준비를 다 끝내고 제사상에 음식들을 하나씩 올렸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이 없는 시어머니였기에 찬희는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시어머니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는 했다.

자신이 엄마를 닮았다는 진우의 말처럼, 눈웃음을 지으면 완전히 사라지는 눈을 가졌는지, 진우처럼 동그란 코를 가졌는지 사진만 봐서는 찬희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찬희의 친정 엄마처럼 선하지만 말수가 적은 분이셨을지, 아니면 진우처럼 살갑고 다정다감한 분이셨을지 성격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사진 속에 비치는 미소처럼 온화한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가셨지만 그분이 남기고 간 가족들 간의 끈끈한 정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후를 낳은 이후로는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어린아이들을 놔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려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 멀리 떠나지 못하고 항상 함께 자리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은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며 찬희는 서툰 손으로 만든 나물들을 하나둘씩 제사상에 올렸다.

설날 제사를 끝낸 뒤 식사를 위해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시아버지는 명절이나 시어머니 기일이면 제수용 막걸리를 들이켜면서 언제나 두 아들들을 향해 얘기했다.

"너희 둘 키운다고 혼자서 고생 많이 했다."

그러면 두 아들들은 매번 똑같이 말했다.

​"알죠."

찬희 또한 그런 시아버지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두 아들을 홀로 키우신 시아버지가 한 편으로는 불쌍하고 또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전혀 시어머니를 알지 못하는 자신조차도 한 번씩 시어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는데 시아버지는 평생 보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살았을지도 궁금했다.

명절 때마다 매번 내뱉는 '고생 많이 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아내 없이도 자식을 잘 키워낸 것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시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큰 아들이 중3, 작은 아들이 중1 때 시어머니는 폐암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식당을 하며 먹고살기 바쁘니 평소 건강 검진 같은 건 생각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다 며칠 째 복통이 너무 심해 내과에 가서 내시경을 찍은 날, 의사는 대학병원에 가라며 소견서를 적어 주었다.


여러 검사를 마친 뒤 결과가 나오는 날, 시아버지는 대학병원 진료실로 혼자 조용히 불려 갔다.

"암.. 암이라니요."

소세포폐암이라고 했다.

빨리 발견하지 못해서 이미 암이 진행된 상태라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에만 의존할 수 있을 뿐 수술도 힘들다고 했다.


담배라고는 입에도 안 대본 사람인데 그게 가능한 일이냐며 시아버지는 원망하듯 의사에게 따져 물었다.

의사는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적 요인이 폐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환자가 혹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시아버지는 부부가 시장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스 불을 사용해서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나 미세먼지, 발암물질 등이 호흡기로 들어갈 경우, 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의사는 눈물 나도록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미 간으로도 전이가 되었기 때문에 평균 생존 기간이 앞으로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이라고 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절망적인 소식에 시아버지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말로도 표현이 안될 정도의 절망감에 시아버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누라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어린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인 큰 아들이야 어떻게 서든 이해를 시켜 보겠지만, 아직 어린 애나 마찬가지인 천둥벌거숭이 둘째에게는 어떻게 얘기를 꺼낼 것인가.

혼자 진료실을 나온 시아버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에게는 약 잘 먹으면 나을 거라고 나지막이 타일러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병색이 짙어가는 마누라에게 시아버지는 이제 식당에도 나오지 말고 집에서 좀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졸지에 혼자서 식당 운영을 하게 된 시아버지는 몸도 힘들었지만 한 번씩 울컥울컥 치밀어 오는 울화 때문에도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능한 나한테 시집와서 평생을 고생만 한 사람인데 왜 먼저 데리고 가는 거요?"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도 질러보았다.

하지만 하늘은 처절한 외침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너무나도 눈 부시고 푸르기만 했다.



이따금 식당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시아버지는 깜짝깜짝 놀랐다. 집 사람이 너무 아파 떼굴떼굴 구르면서 빨리 병원에 가자고 수화기 안에서 소리칠까 싶어서였다.

그럴 때마다 일하던 식당 문을 닫고 식당 근처 마누라가 아파하고 있는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가야만 했다.


집과 병실을 오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던 어느 날, 얼굴에 살이라고는 다 빠져서 눈이 옴폭 패인 부인이 말했다.


"여보, 나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얼른 나아서 우리 현우, 진우 대학 들어가는 것도 봐야지."

"여보, 내가 먼저 가더라도 우리 현우, 진우는 꼭 잘 챙겨줘요."

"오늘 많이 아팠나 보네. 얼른 눈 감고 자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몰래 훔치고는 옆에 누워 있는 부인의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시아버지는 새벽 녁에야 겨우 잠이 들었고, 얼마 후 아들들의 등교를 위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혹시나 싶어 옆에 누운 마누라의 손을 잡아 보았다.

손이 이상하리 만큼 차가웠다.

몸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도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여보" 하며 외마디 괴성을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아들 둘이 허겁지겁 안방으로 뛰쳐 들어왔다.

큰 아들은 엄마, 엄마 울먹이며 119에 전화를 돌렸다.

아직 어린 작은 아들은 먼발치에서 서 있기만 했다.


이윽고 엠블란스가 도착했고 들것에 실려 나간 시어머니는 그대로 영안실에 안치되었다.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시아버지는 실의에 빠질 새도 없이 두 아들들을 살뜰하게 챙기며, 시장에서도 부지런히 장사를 이어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가던 사내아이들이었지만 두 아들들은 어긋남 없이, 고맙게도 잘 자라주었다.




엄마 없이도 번듯하게 잘 살아왔지만, 진우는 항상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와 대학병원에 갔다 온 지 6개월 만에 엄마는 가족의 곁을 영영 떠나 버렸다.

아빠가 진우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준 적은 없었지만 엄마가 입원하던 날, 아빠가 술에 취해 친구와 통화하던 내용을 듣고 엄마가 암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어린 진우에게는 충격이 될까 봐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함께 출근하던 식당에 엄마는 나가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 갔다 와도 집에 아무도 없으니 심심하고 할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

특별히 갖고 놀만한 장난감도 없어서 어린 진우는 형이랑 같이 쓰는 방 책꽂이에 꽂혀 있는 위인전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인지 잘 알아먹기 힘들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 많다고 느꼈다.

자기도 커서 그런 훌륭한 위인이 되어야겠다는 야심 찬 꿈도 꿔 보았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에는 방과 후를 책을 읽으면서 홀로 지내왔는데, 이제 굳이 진우 옆을 지켜 주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돼서야 엄마는 옆에 계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진우 옆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진우가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는 진우 밥을 챙겨주기는커녕 꼼짝 못 하고 방에 누워서 끙끙 앓기만 했다.

그러면 진우는 아빠가 아침에 끓여 놓고 간 죽을 데워서 엄마에게 갖다 드렸다.

어떤 날은 엄마가 숟가락 들 기운도 없다고 해서 죽을 떠서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어 드리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겨우 몇 숟가락을 받아먹다가도 삼켰던 것을 바로 올려버렸다.

"엄마, 먹기 많이 힘들어?"

"어. 엄마 도저히 못 먹겠다. 그냥 엄마 좀 눕혀줄래?"

그렇게 엄마는 먹는 날보다 아무것도 못 먹는 날이 훨씬 많았다.

얼마 뒤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해 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날 엄마는 진우를 나지막이 불렀다.

"우리 진우, 아빠랑 형이랑 잘 지낼 수 있지?"

"어."

"그래,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 한 번만 안아 줄래?"

기운이 없는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힘들어했고, 그런 엄마를 진우는 양팔로 감싸 안아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는 잠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죽은 엄마를 본 진우는 엄마의 충격적인 모습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아버지와 형의 오열을 보면서도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엄마의 장례식 이후 아버지와 형은, 아직은 어린 진우에게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그런 가족들을 보며 진우는 이따금씩 생기던 화도 꾹 씹어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시기 이전보다 더욱 어른스러운  모습을 아버지와 형에게 보여주려고 했고, 일부러라도 더 막내다운 살가움으로 가족들을 대했다.

학교에서도 예전처럼 친구들과 밝게 웃고 떠들며 선생님들의 걱정도 잠재웠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항상 엄마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았다.

​하루는 우연히 엄마의 옷을 넣어 놓았던 서랍을 열었더니 엄마가 병원 갈 때 두르던 스카프가 보였다.

아버지가 엄마의 서랍을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스카프가 서랍 뒤쪽으로 넘어가 있어서 아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쓰던 스카프가 나타나자 진우는 다시금 엄마가 떠올랐다.

건강했던 엄마의 모습과 돌아가시기 직전 움푹 파인 얼굴을 한 엄마가 기억의 한 켠에서 겹치듯 서서히 나타나자 진우는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혹시나 형이 학교 갔다 와서 그 모습을 볼까 봐, 아버지가 식당을 마치고 집에 와서 그 모습을 볼까 봐, 얼른 주먹을 쥐고 눈물로 얼룩진 볼을 훔쳤다.



"가족들 걱정 안 하게 몸 잘 챙겨."

"네. 아버지도 건강 잘 챙기세요. 끼니 거르지 마시고."

그렇게 명절이면 부자간에 서로의 건강 챙기기에 바빴다.

이전 08화 [소설 8화] 사라진 비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