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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Oct 26. 2024

[소설 10화] 잃어버린 반지


명절 연휴가 지나고 며칠 후 회사에 다녀오니 A4사이즈의 우편물이 집에 도착해 있었다.
발송지는 건강검진센터였다.

'이제야 결과가 나왔나 보네!'

1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종합건강검진의 결과지였다.

찬희는 회사에서 전액 무상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지만, 가족이 검진을 받을 경우 비용을 추가로 내야 했다.

진우네 회사에는 그런 복지까지는 없어서 그래도 하는 김에 비용을 더 주고라도 남편과 함께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 왔었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작년에 걸쳐 진우가 일본에 파견 근무를 가는 바람에 진우는 검사할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았다.

정해진 기간에는 무조건 검사를 완료해야 해서 그 시기에는 찬희 혼자만 종합건강검진을 받았고, 진우는 건강 검진을 한해 건너뛰게 되었다.

'1년 정도 안 했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빨리 검사할 수 있는 날짜로 예약을 한 뒤 검진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남편이 원래 일하는 곳으로 복귀하게 되어서 시간도 한층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날을 잡아 검사했던 결과지가 한 달이 넘어 도착한 거였다. 안 그래도 이번에는 명절까지 끼어 있어 결과지가 빨리 안 오나 보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찬희는 본인의 결과지를 먼저 펼쳐보았다.
서후에게 모유 수유하느라 금주를 생활화하는 찬희에게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 운동을 제대로 못한 탓에 체지방이 늘어나 있어서 1주일에 3번 이상, 30분 정도의 유산소 운동은 실시하라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서후를 임신했을 때는 태어나는 막달까지도 매일 1시간씩 걷던 찬희였다.

그래서인지 서후는 출산 예정일보다 10일 전에 산통이 오는 바람에, 일본에 있던 진우는 서후가 태어나는 모습을 미쳐 보지 못했다.

​그나마 제일 빠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진우가 탯줄을 자를 새도 없이 서후는 이미 찬희의 뱃속에서 나와서 신생아실로 옮겨져 있었다.

정해진 면회 시간 말고는 아기를 보는 것조차도 힘들어서 진우는 그 시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출산 이후에도 따라오는 고통 때문에 찬희는 앉아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아기를 보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남편이 귀엽고도 사랑스러워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날을 떠올리며 찬희는 생각했다.

'최근엔 내가 좀 안 걷긴 했지.'

찬희는 서후의 돌이 지나면 운동을 좀 해야겠다 결심하며 자신의 검사지를 덮었다.

​다음은 남편의 결과지를 볼 차례였다.

한 장,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종합소견란에는 병원에 재방문을 하라는 안내글이 적혀 있었다.

"그 병원 항상 과잉진료 심하던데 또 그런 거 아냐?"

퇴근한 진우에게 결과지를 보여 주며 찬희가 말했다. 순간 진우는 얼굴에 근심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했다.

"내일 연차 쓸 테니 아침 일찍 바로 병원에 가자"

처음엔 진우의 그런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찬희는, 잠시 후 굳어있는 진우의 얼굴을 보자 왠지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는 검진센터에 갈 생각에, 잃어버린 반지에 대한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찬희는 이때까지 건강검진을 할 때 위내시경 검사만 진행을 했었는데, 새벽 출근으로 인한 과민성대장염 때문인지 최근에 장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건강검진에는 위내시경을 하는 김에 대장 내시경도 함께 신청을 했었다.

검사일을 며칠 앞두고 대장 내시경 약이 집으로 미리 도착했다.

약과 함께 '대장 내시경을 위한 주의 사항'이 적힌 안내장도 봉투 안에 함께 동봉이 되어 있었다.

처음 해보는 대장 내시경은 가려야 하는 음식도 많고 주의 사항도 많았다.


안내장을 쭉 읽어보던 찬희는 이 글에 눈이 갔다.

'귀금속(반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발찌, 시계 등) 및 금속류는 검사 시 화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착용을 금합니다. 귀중품 분실의 우려도 있으므로 내원 전 모두 제거하시고 오십시오.'

안내문을 보며 찬희는 생각했다.

'아.. 금속류 착용하고 검사받다가 잘못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는 거였구나. 잊지 말고 반지는 꼭 빼놓고 가야겠네.'

그러면서 찬희는 연애 시절 진우가 처음 선물로 사준 얇은 18K 반지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취업하면 더 좋은 걸로 사주겠다고 하면서 준 반지였다. 얇디얇은 반지였지만, 처음 사랑을 시작하며 받은 반지인지라 찬희에게 크기나 가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혼 예물로 훨씬 두껍고 비싼 반지를 진우와 함께 맞췄지만, 아무래도 일할 때에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해서 특별한 모임에 나갈 때가 아니면 패물 반지는 끼지 않고 집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대신에 진우가 처음 고백하면서 준 선물인 실반지만큼은 365일 절대 빼놓는 법이 없었다.

워낙 얇아서 끼나 안 끼나 별 감각이 없었기에 내 몸의 일부인 냥 항상 착용하고 다녔던 것이다.

잊지 말고 꼭 집에 빼놓고 나가야겠다는 다짐은 하필이면 검사하러 간 당일 아침 병원에 도착해서야 떠오르고 말았다.


'아, 맞다! 화상과 분실의 우려 때문에 반지 같은 건 다 빼놓고 오라고 했었는데...'

이미 끼고 온 반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단 바지 주머니 깊숙한 곳으로 반지가 안 빠지게 꾹 쑤셔 넣었다.

반지가 들어 있는 바지는 잘 벗어서 차곡차곡 접어 락커 내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 대로 속옷까지 모두 탈의한 후 대장내시경 검사 가운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왔다.

상복부 초음파, 시력, 청력 검사를 순서대로 마치고는 위내시경 검사실 앞에 앉아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위내시경 검사실에서는 찬희의 이름을 불렀고, 침대에 누워 수면 유도제를 맞으니 자신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무것도 모른 체 잠들어 있던 찬희는 1시간 후 수면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모두 마치고 회복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떠 보았지만 머릿속이 여전히 몽롱한 상태라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천천히 눈을 뜨고는 누워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보았다.

다행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침대에서 천천히 내려와 비틀거리면서 내시경실 입구에 놔두었던 휴대폰을 가지러 갔다.

휴대폰을 집어드는 순간 또 휘청했지만, 주변에 있는 간호사의 부축을 받고는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찬희보다 검사 항목이 좀 더 적었던 진우는 이미 검사를 다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있다고 했다.

좀 더 자고 천천히 나오라는 진우의 말에도 혼자 기다리고 있을 진우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찬희는 비틀거리면서 탈의실로 향했다. 허둥지둥 락커 문을 열고 바지를 꺼내어 입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 수면 마취가 안 깨서 손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가 싶어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지만,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너무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머니 끝부분을 꼼꼼하게 만져보았다. 바지 주머니 끝에는 여태껏 몰랐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주 입던 바지가 아니라서 그런 구멍이 있는 줄 이제야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도 만약 뚫린 구멍 사이로 반지가 빠져나갔다면 락커실 바닥 어딘가라도 떨어진 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반지는 오간 데가 없었다. 락커 틈 사이로 굴러 들어간 것이라면 무거운 철재 락커를 들어 올려라도 봤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헐크가 아닌 이상 그런 괴력이 생길 리가 없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더 이상 락커와 락커실 안을 뒤지는 것은 그만두고 남편이 기다리는 대기실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연애할 때는 반지가 워낙 가늘었던 탓에 한두 번 끊어져서 금은방에서 가서 반지를 이어 붙인 적은 있었지만, 아예 반지를 통째로 잃어버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가기 전 안내데스크에 먼저 찾아간 찬희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혹시라도 락커실에서 얇은 금반지가 나오면 꼭 보관 좀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휴대폰 번호를 남겨 놓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건강검진센터에서 반지를 찾았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5일에 한 번씩 찬희가 직접 검진센터에 전화도 해 보았지만, 습득한 반지는 없다고 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찬희는 내일 진우의 재검진을 위해 건강검진센터에 방문하면 바로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건강검진센터를 방문한 찬희는 혹시나 하는 작은 희망을 안고 안내데스크로 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똑같았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발견된 반지가 없습니다."

찬희는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실망감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미 잃어버린 물건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보다는 왜 재방문을 하게 된 것인지, 어떤 이유로 재검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들을 생각을 하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진우는 결혼 초기에 하도 기침을 하길래 별일이야 있겠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폐렴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회사에 병가까지 내면서 길게 입원을 했었고, 의사는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잃어버린 반지로 인해 생긴 불안감은 그때의 기억과 맞물리면서 더욱 커져만 갔고, 찬희는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진우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의사의 면담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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