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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찬스 Oct 26. 2024

[소설 11화]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불려 간 진우는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흉부 X-선 촬영 검사상 고립성 폐결절이 발견되었다며, 대학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가 작성해 준, 대학병원에 제출할 소견서를 받아 들며 진우는 생각했다.

'설마... 엄마가 걸렸던 병이 나한테도 온 건가.'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앞섰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아간 진우는 노트북을 켜고 늦은 시간까지 폐암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에는 한국인의 사망 원인으로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고혈압 등이 가장 많다고 나와 있었다.

그중 압도적으로 사망률 1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암이라고 했는데, 암 중에서는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했다.

'음... 사망률 1순위...'

사망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진우는 심장이 멎을 만큼 가슴이 섬뜩해졌지만, 아닐 거라 고개를 흔들며 다시 인터넷이 알려주는 정보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폐암의 종류는 암세포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소세포 폐암과 비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고 했다.

'소세포 폐암'


그 글자를 본 순간, 돌아가시기 직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우가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탓에 진우는 엄마의 병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아빠와 아빠 친구 통화에서 엿들었던 병명은 바로 그 소세포 폐암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한참 뒤에도 아버지에게 엄마의 병명을 굳이 묻고 싶지 않아서, 진우는 엄마의 병명이 소세포 폐암 정도인 것만 알고 있었다.

소세포 폐암은 악성도가 높아서, 발견 당시에 이미 림프관 또는 혈관을 통해서 다른 장기나 반대편 폐 등으로 전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소세포폐암은 급속히 성장하고, 대체로 암 덩이가 큰데, 소세포 폐암 환자의 대부분은 흡연량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글귀를 보자, 잠시 흡연을 했던 군복무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학교 내의 호기심 많은 친구들 몇몇 중에는, 신기하게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담배를 가지고 다니면서 몰래 피우는 아이들이 간혹 있었다. 진우는 담배 냄새도 싫었고, 그런 친구들과는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담배를 접할 기회도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아빠도 그렇게도 피워대시던 담배를 입에도 안대는 것 같아서, 굳이 몸에 안 좋다는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어느 날 고참이 진우를 불렀다. 같이 담배를 피자는 것이었다.

진우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말했지만, 고참은 말했다.

"기껏 생각해서 주는 건데, 이럴 때는 피는 거야." 라며 한 모금해 보기를 권했다.

힘든 군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진우도 연기를 내뿜으며 스트레스 해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순순히 담배를 받아 불을 붙여 보았다.

담배를 빨아들이는 순간, 처음에는 매캐했지만, 연기를 내뱉는 동안의 희열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도 고참이 한 번씩 담배 한 개비를 챙겨줄 때마다 진우는 거부할 수 없었고, 그런 날을 기다리기조차 했다.


군대 제대 날에도 진우는 편의점에 들러서 담배를 한 갑 샀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이 이미 머리를 앞서간 것이었다.

그 뒤에도 진우는 담배를 자주 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안 핀다고 할 수 만도 없는 일상들을 이어갔다.

그러다 찬희와 결혼을 하고 몇 달 뒤,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폐렴 진단을 받게 되었고, 의사에게 가족력이 있을 경우 보통 사람들에 비해 폐암 발병 확률이 2~3배는 높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계속 담배를 피우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띄엄띄엄 피던 담배는 이후로 완전히 끊게 되었다

물론 폐암의 가장 큰 요인은 흡연이었지만, 직업적 요인도 있다고 정보창 화면에는 나와 있었다.

찬희와 같은 학교 무역학과를 다니고 졸업 후, 건설자재를 취급하는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진우는 자신이 미세먼지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은가 싶기도 했다.

최근 들어 밤에 자면서도 기침과 가래가 많이 나오고, 이상하게 목소리가 약간 쉰 듯하다 느꼈는데, 혹시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피 섞인 기침을 많이 하셨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폐암의 일반적인 증상과 자신의 증상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 찝찝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던 진우는 얼른 노트북의 전원을 끄고 덮개를 닫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피곤함이 급하게 밀려와 침대에 눕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너무 깊이 잠들어서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꿈속에서 엄마가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서둘러 예약을 잡은 검사 당일이 되자, 아침 일찍 진우와 찬희는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부터 대학병원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대한민국의 아픈 사람들은 여기에 다 모였나 싶을 정도로 대기실에는 앉아 있을 자리조차 찾기가 힘들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헤집고 겨우 의자에 앉으며 찬희가 말했다.

"별 일 아닐 거야. 그치?"

라고 말하는 찬희는 입술은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그래,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두 사람은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서로를 위로했다.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진료실로 불러간 진우와 찬희는 의사에게 건강검진센터에서 받은 소견서를 내밀었다.

소견서를 한참 보던 의사는 흉부 CT 촬영과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은 진우와 찬희는 CT 촬영과 기관지 내시경 예약일자를 잡았다.

​며칠 후 CT 촬영과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끝내고는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병명은 '소세포 폐암'이라고 했다.

의사는 소세포폐암의 경우, 빨리 자라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암이어서 대개는 수술이 불가능하지만, 진우의 경우에는 암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수술을 시행해 보겠다고 했다.

소세포 폐암은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현저히 높긴 하지만, 일단 수술을 먼저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술 가능 일자를 체크한 의사는 3월 31일을 수술 날짜로 잡겠다고 했다.

​수술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우와 찬희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하필 3월 31일은 서후가 태어난 지 1주년 되는 서후의 돌이었다.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던 진우가 일본 지사에 파견 근무를 가게 된 것은 빠른 승진을 위해서였다.

일본 지사에서 5개월 단기로 근무할 직원이 필요했는데,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인사 고과에 반영해 준다는 것이었다. 4월에 출산이 예정되어 있는 찬희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지만, 찬희는 웃으면서 말했다.


"5개월 단기 근무면 어차피 아기 태어나기 전에는 한국 올 수 있을 텐데 뭘. 내가 걱정돼서 그런 거면 나 걱정하지 말고 잘 갔다 와."

별 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대하는 찬희를 뒤로 하고 진우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과 생활 방식 탓에 처음에는 일본이란 곳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밤마다 찬희의 사진과 태어날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10일 정도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날도 숙소로 돌아와서 좁은 침대에 누워,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과 상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찬희에게서 카카오톡의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영상 통화가 아닌 톡으로만 연락이 왔을 텐데, 무슨 일인가 싶어 진우는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빠, 나 진통 오는 것 같아. 배가 이상하게 아파."

출산 예정일이 아니라서 안심하고 있던 차에, 찬희의 진통은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언니한테 연락할 테니 오면 병원에 같이 가라고 일러둔 진우는 선희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아, 처형. 찬희가 지금 진통이 오나 본데요, 혹시 병원에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엄마야! 알겠어. 지금 찬희한테 바로 전화할게."


은행에서 막 퇴근을 마친 선희가 부랴부랴 찬희에게 달려갔고, 선희의 차를 타고 안전하게 병원에 도착한 찬희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급히 비행기를 예약해서 한국에 돌아왔지만, 진우는 아쉽게도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을 볼 수는 없었다.

승진 한 번 빨리 해볼까 해서 일본에 갔다가 아이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못 받았다 싶어서, 괜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찬희도 별 탈 없이 잘 출산해서, 아기도 건강하게 잘 태어나 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찬희는 자연 분만을 했기 때문에 회복도 빨라서, 심지어는 힘들었던 일본 생활을 했던 진우보다 더 씩씩하고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저런 게 엄마의 힘인가 싶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항상, 언제까지나 아이를 잘 지키고 보살펴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결심으로 살아온 진우였는데, 수술 때문에 하필이면 아이의 돌까지도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돌잔치할 생각에 설레어하던 찬희를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자신의 마음도 마음이었지만, 찬희가 실망할 걸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쓰라렸다.
하지만 찬희는 여전히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 끝나고 가족들끼리 간단하게 식사만 해도 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진우가 찬희에게 얘기했다.

"수술 잘 마치고 돌아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아빠 노릇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서후 걱정하지 말고 수술이나 잘 받고 와."

그렇게 진우는 수술실로 향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수술실에서 나왔다.

예상과는 달리 미세 전이가 진행된 상태여서 수술을 중단했다고 의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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