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찬스 Oct 14. 2024

[소설 1화] 절박한 외침

절박한 외침


"여... 여어..."


남편을 부르기 위해 입을 뻥긋해 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음처럼 소리가 나지 않자 너무 답답했던 찬희는 다시 한번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러 보았다.

"여어... 여... 보... 잠깐만!!!"

남편을 향해 울먹이며 소리치던 찬희는 본인이 지른 괴성에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지만 너무나 절박하게 고함을 질렀던 모양이었다. 한겨울이라 서늘한 방 안이었는데도, 찬희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남편이 잘 자고 있는지 걱정되어, 찬희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남편의 얼굴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다행히도 남편의 얼굴에는 온기가 가득했고, 게다가 코까지 드렁드렁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찬희의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서후가 엄마의 고함 소리에 놀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서후는 밤마다 깊은 잠을 못 자고, 새벽 3시면 잠에서 깨곤 했다.
찬희는 촉촉이 젖은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서후야, 얼른 넷네하자."


오늘은 본인의 소리 때문에 깼지만, 항상 그 시간이면 일어나 보채는 서후를 찬희는 토닥이며 재우려 했다.


교대 근무를 하는 찬희는, 오전 근무가 잡힌 날이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다.
오늘도 오전 근무였던 찬희는, 항상 본인보다 1시간 이상은 일찍 일어나 보채는 서후가 오늘따라 더욱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잠들어 있을 때는 그렇게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없는 아기 천사였다. 하지만 잠도 자지 않고 울고 있는 모습은 내 아기가 아니라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악마는 아무리 가슴을 토닥여도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부스스한 얼굴을 한 찬희는 남편이 깰까 봐 얼른 서후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서후야, 엄마가 좀 있으면 출근해야 하니까 얼른 자자. 그래야 엄마도 좀 더 잘 수 있지"


엄마에게 안기자 울음을 그친 아기는 엄마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포근한 품에 안겨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마치 '엄마 품이 이렇게 좋은데 왜 나를 딱딱한 바닥에 눕혔어?'라는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그렇게 찬희에게 안겨 있던 서후는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깊이 잠든 것 같았다. 그런 서후를 찬희는 바닥에 천천히 눕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서후는 등이 방바닥에 닿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울어대기 시작했고, 찬희는 그 울음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릴까 싶어 다시 아기를 들어 올렸다.

'아! 오늘도 잠은 다 잤구나'

등골이 서늘했던 꿈도 잊은 채, 몽유병 환자처럼 서후를 안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던 찬희는 오늘도 잠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후를 낳은 이후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밤에 잠을 푹 못 자는 것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무작정 기다리는 게 답인지도 알 수 없었다.


결혼 전 남자친구였던 진우는, 주변 친구들보다 결혼하기에 이른 나이였던 찬희에게 청혼을 했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자라왔던 환경과는 달리,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오손도손 재밌게 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진우와 그렇게 남들보다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찬희는 남편의 뜻에 따라 아이도 빨리 가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임신을 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의 온화한 성격과 자신의 쌍꺼풀 진 큰 눈을 닮은 아이를 낳는 게 소원이었지만, 아기는 그렇게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결혼 후 얼마 동안은 아이가 생기기만을 무작정 기다려 보았다. 그러면서 한 해, 한 해가 지나갔고 이제는 임신이 안될 수도 있겠다 여기며 마음을 놓아버렸더니, 아기가 저절로 들어섰다.
그렇게 뜸을 들이던 아이가 결혼 후 5년이 넘어서야 찬희 부부의 곁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이였기에 태어난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하지만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데리고 온 아기는 그날로부터 잠을 제대로 자는 법이 없어서 찬희를 힘들게 했다.

가끔 내가 이러려고 아이를 가졌나 하는 회의감과 원망 섞인 마음에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아기의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아기는 천사 같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고, 찬희의 마음은 언제 그랬나 싶게 쌓여있던 나쁜 감정들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엄마가 된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어?'


찬희는 좀 있다 엄마에게 아기를 인수인계하고 출근 준비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새벽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건너 방에서 주무시던 엄마는 딸의 출근 준비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일어나셨고, 찬희에게서 서후를 받아들였다.
엄마는 찬희가 아기일 때도 포대기에 업어 키웠기 때문에 포대기가 편했다. 서후를 받은 엄마는 능숙하게 아기를 업어 포대기로 질끈 묶으면서 말했다.


"오늘도 제대로 잠도 못 잤겠네."


엄마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찬희를 응시했다.


"응. 엄마. 새벽마다 미치겠어. 얘는 왜 이렇게 안 자는 거야? 언제쯤 잠 좀 푹 자고 출근할 수 있을까?"


찬희가 짜증이 섞인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고생이 많다. 그래도 돌 지나면 좀 나아질 거야. 도 아기 때 그렇게 안자더만, 돌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한 번도 안 깨고 잘 자더라"


"그렇긴 한데, 새벽에 출근도 해야 되고, 진짜 힘드네"


돌이 되려면 2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2 달이라는 시간이 찬희에게는 20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잠은 이미 달아났지만 몸이 너무 피곤했던 찬희는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라도 해야 정신 차리고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찬물 세수를 얼른 마치고는 주방에 나와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낮 12시 반까지는 아무것도 못 먹을 테니 뭐라도 꼭 챙겨 먹어야 그 시간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라 입 안이 까끌했지만 겨우 곡물빵을 씹어 삼키고는 화장실 거울을 보며 이를 닦았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남편은 잠결에 마른기침만 몇 번 하고는,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다.

작년에 일본 단기 파견 근무를 하고 온 이후로 진우는 예전보다 많이 피곤해했다.

서후가 태어난 이후로 찬희처럼 제대로 잠을 못 자서 인지, 아니면 귀국 이후 회사 업무가 더 늘어나서 힘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우는 요즘따라 더욱더 체력적으로 힘들어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우는 언제나 눈웃음을 지으면서 걱정하는 찬희를 안심시켰다.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울 수도 있어서 안방 불을 켤 수는 없었다. 찬희는 살그머니 가방 안에 든 화장품 파우치를 갖고 나와서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의 환한 불빛을 보며 회사에서 정해준 가이드라인대로 빠르고 능숙하게 풀메이크업을 마친 찬희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