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직장에 올 한 해 변화가 많았는데, 올해 중반쯤에는 일하던 곳이 계약 종료가 되었고, 올해 말에는 타지방으로의 발령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타지방으로의 발령은 그곳과의 계약이 성사되어야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건의 계약 중, 어느 지역으로 발령을 받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사 어느 곳이 계약 확정이 된다 한들 지금 사는 곳과는 이동 시간이 아주 먼 곳으로 갈 가능성이 많았다.
남편은 계약이 빨리 진행되지 않자 조바심을 냈다. 확정이 난다 해도 객지에서 혼자 생활해야 하는 점 때문에도 심적 부담이 큰 탓인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번은 밤늦게 술이 잔뜩 취해온 남편이 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편이 혼자 객지 생활을 하게 생겼는데, 지금 잠이 와?"
주정이라 생각하고 자는 척하기에는 멈출 것 같지 않았던 나는, 적정선에 잘라야겠다 싶어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자기가 혼자 멀리 가는 거 너무 걱정되지. 그래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뭐 하러 걱정만 해? 그냥 시간 가는 대로 무심히 좀 지켜만 볼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말이야."
이 말 탓인지, 아니면 내게 얻어맞은 등짝 스매싱 탓인지, 그제야 남편은 정신을 차리며 내게 말했다.
"맞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내가 걱정이 앞서긴 했네. 우리 가족들 자주 못 본다는 생각에 내가 불안한 마음이 너무 컸나 보다."
그렇게 남편의 걱정을 다독이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줄은 몰랐다.
회사 직원 감축, 내지는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내게도 들려온 것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이전부터 짐작은 했었지만 회사 내에서 구체적인 정보들이 나오기 시작하니 나 또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회사가 정말 없어지면 어떡하지? 대출금도 하나도 못 갚았고,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나이 들고 눈까지 점점 나빠지는 사람 써 줄 데가 있을까?'
막막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만약 새 직장이 안 구해진다면 이제 대체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불안감에 숨통마저 조여올 정도였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도 모였다 하면 답도 없는 한숨 나오는 얘기들로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차에 '아차!' 하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남편이 회사일로 힘들어할 때 내가 했던 말이 뭐였더라?'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뭐 하러 걱정만 해?그냥 시간 흘러가는 대로 무심히 좀 지켜만 볼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말이야." 남에게는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툭 던진 나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당사자가 되니 정신이 흐려져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소문에 불과한 얘기들을 가지고 왜 그렇게 마음의 파문을 일으킨 거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나였는데, 정작 나 자신은 그런 인생의 지혜를 잊고 살고 있었구먼.'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확정이 난 것도 없지만, 설사 결정이 난다고 해도, 나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행동들을 차근차근 해나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어떤 부정적인 얘기에도 흔들리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작은 준비들로, 나는 걱정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티베트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게 없겠네"
지금 이 순간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을 줄 안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걱정하고 푸념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걱정은 더 큰 걱정만 부를 뿐이다.
지금부터 아직 생기지도 않은 걱정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심히 말이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에 더욱 열중하도록 하자. 그런 것이 없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지 열심히 찾아보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걱정할 틈도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