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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pr 12. 2024

17. 고통을 견디는 능력

1943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라는 도시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여섯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소녀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아이였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여 부모님을 난처하게 만들곤 했지요. 


청소년기가 되자 그녀의 문제행동은 더 심해졌습니다. 특히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는 등의 자해행동을 보이곤 했지요. 가족은 그녀를 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17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녀는 자해를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에 홀로 격리실에서 지냈지요. 정신병원 의사들은 그녀의 증상이 조현병(schizophrenia)과 일치한다고 판단했고, 관련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정신분석도 병행했지요. 하지만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수단으로 전기충격치료까지 진행했지만, 마찬가지로 효과가 없었지요. 그렇게 그녀의 입원생활은 26개월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정신병원 의료진은 그녀를 치료하지 못했고, 그렇게 그녀는 퇴원을 했지요. 그녀는 그때를 회고하며 ‘지옥 같은 시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서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하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요.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고, 간단한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로욜라 대학이라는 곳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지요. 


그렇게 홀로 고군분투하며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정신병원 의사들이 자신을 잘못 진단했으며, 치료 또한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자신과 같이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파악하게 되었고요. 


이후 그녀는 더욱 공부와 연구에 매진했고, 결국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됩니다. 자살 문제를 연구하고 예방하는 기관과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 등으로 일하던 그녀는 워싱턴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지요. 


그녀는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문제가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증상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해당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치료이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변증법적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 therapy)라는 치료이론을 만들어냈지요. 변증법적행동치료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으로 입증되어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을 견디어 내고 자신의 꿈을 이룬 그녀는 현대 심리치료계에 한 획을 그은 마샤 리네한(Marsha Linehan)입니다.



워싱턴 대학교 마샤 리네한 교수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심리장애가 생소하게 들릴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성격장애라는 용어를 처음 듣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하지만 성격이 무엇인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성격이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패턴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의 성격은 내향적이야, 라고 말할 때에는, 그 사람이 평소 홀로 있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행동 경향을 ‘내향적인 성격’으로 포착한 것이지요. 


행동의 이면에는 생각과 감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선호할 때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데, 그 사정이 바로 생각과 감정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향적이라 불리는 H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긴장합니다. 딱히 상대가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H는 예측과 통제를 몹시 중요하게 여깁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잘 돌아가는 것을 즐기지요. 그런 측면에서 다른 사람은 몹시 불편한 대상입니다.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H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상황이 되면 ‘저 사람은 또 어떤 돌발행동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하게 됩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상호작용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H는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은 그를 ‘내향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성격장애는 무엇일까요? 성격장애는 심리장애의 한 유형입니다. 심리장애는 어떤 심리적 특성이 심각한 고통이나 부적응을 초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결 지어 보면, 성격장애는 어떤 사람의 성격이 심각한 고통이나 부적응을 초래할 때 진단되겠다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성격문제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성격이 다양한 만큼 성격장애의 유형 또한 다양합니다. 아직 모두 밝혀진 것도 아니고요. 여러분이 비교적 친숙하게 여길 만한 성격장애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나 반사회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를 들 수 있겠네요. 경계선 성격장애는 조금 생소할 겁니다. 이름도 독특하지요. 


경계선이란 두 영역의 경계가 되는 선을 말합니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경계선’도 같은 의미이죠. 경계선 성격장애가 탄생하도록 만든 두 영역은 정신증(psychosis)과 신경증(neurosis)입니다. 


정신증은 환각이나 망상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심리장애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 등이 포함되지요. 이러한 장애를 갖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이 현실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신경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검증하는 능력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들은 다양한 문제로 고통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현실감각은 유지하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다양한 심리장애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공황장애 같은 장애들이지요. 


경계선은 본래 정신증과 신경증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습니다. 이들은 평소에는 신경증 같아 보이는데, 가끔씩 정신증 같은 증상을 보였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 용어가 경계선이고, 경계선적 특징을 성격적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경계선 성격장애를 진단하게 된 것입니다. 



1987년에 개봉한 Fatal Attraction이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은 경계선 성격의 특성을 잘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네한은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지요. 그들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자해와 같은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행동도 많이 나타내었지요. 그녀는 궁금했습니다. 왜 그들이 그토록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오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녀는 한 가지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모두 정서적 고통이 유발되었을 때 그것을 적절히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분노나 슬픔, 두려움 등의 감정이 유발되면 이들은 크게 혼란스러워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빠르게 그 감정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정서적 고통을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그들이 취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서적 고통을 견디는 대신 신체적 통증을 택합니다. 그들이 자해를 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피하거나 막기 위함이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그들의 정서적 고통은 강렬했고, 그들은 그 고통을 다루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리네한은 그들이 나타내는 공통적인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고통감내력(distress toleranc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고통감내력은 고통을 느낄 때 도망치거나 회피하지 않고 견디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고통감내력이 낮은 사람들은 고통을 느낄 때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빠르게 회피합니다. 여기서 회피한다는 말은 고통을 유발하는 자극을 제거하거나 피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통 자체를 회피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고통 자체를 어떻게 회피할까요? 사실 이 말은 다소 모호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미 유발된 감정의 고통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어딘가로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특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고통 자체를 ‘줄이는’ 것만 가능합니다. 예컨대 슬픔이 유발되었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 쇼핑을 하는 것, 게임을 하는 것 등을 통해 슬픔으로 인한 변화를 되돌리거나 다른 감정으로 덮는 것이지요. 


이것도 모호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앞서 우리의 몸은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본능 같은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 몸에 고통이 유발되면 일차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행동이 선택지로 떠오릅니다. 


어떤 행동이 떠오를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요.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실 것이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울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겠지요. 무엇이 되었든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행동을 하라고 우리의 마음이 속삭일 겁니다. 이때 다른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곧바로 그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은 고통감내력이 낮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곧바로 그 행동을 선택하지 않고 지연하면서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은 고통감내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지요. 



글을 쓰다가 괴로워져서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때, 곧바로 때려치우지 않고 괴로움을 느끼며 글을 계속 쓰는 분은 고통감내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분들입니다. 



고통감내력이 높은 것이 좋은가, 아니면 낮은 것이 좋은가는 간단히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통감내력이 매우 낮으면 다양한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는 합니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충동적이면서도 파괴적인 문제행동을 나타낼 가능성도 있고, 어쩌면 고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자극을 회피하면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고통을 줄이는 특정 행동을 과도하게 사용한 나머지 또 다른 심리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술을 과도하게 마셔 알코올사용장애를 겪을 수 있고, 지나치게 게임에 몰두하여 인터넷게임장애가 유발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낮은 고통감내력은 매우 다양한 심리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러 연구들에서 확인된 바 있지요. 


일정 수준의 고통감내력을 갖지 못하면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사는 데에도 큰 지장을 겪게 됩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에는 늘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누군가는 말했지요. 그 말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며, 다양한 장애물들로 인한 고통을 견뎌내야 그 삶을 지킬 수 있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동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고통감내력이 지나치게 낮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여러분의 고통감내력이 과연 ‘지나치게 낮은’ 수준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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