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감내력 부족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 적어도 스스로 고통감내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생각과 실제가 다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과 실제가 달라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검사결과는 실제를 반영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고통감내력의 개인차는 꽤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고통을 잘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크게 타고 난 것과 살면서 경험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우선 타고 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고통감내력에 대한 유전 연구는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고통감내력과 매우 밀접할 것으로 추정되는 성격 특성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었지요. 바로 충동성에 대한 연구입니다.
‘충동적’이라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됩니다. 누군가에게 너는 너무 충동적이야, 라고 말할 때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행동부터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심리학에서의 충동성(impulsivity)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리해서 표현하면, 충동성이란 결과를 미리 예상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성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을 비교해 봅시다. 한 사람은 매사에 조심스럽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철저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기다리면서 상황을 파악하지요. 다른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즉흥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는 미리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행동으로 바로 옮깁니다. 충동성 측면에서 두 사람은 대조적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충동성이 낮은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충동성이 높다고 볼 수 있지요.
충동성은 고통감내력과 매우 밀접합니다. 고통감내력이 고통 상황에서 회피하려는 행동을 억제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지요. 충동적인 사람들은 고통 회피 행동을 억제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겪을 때 빠르게 그 고통을 해소하려 하지요. 충동적인 사람들이 다양한 중독 증상에 빠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충동성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역사가 긴 편입니다. 유전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지요. 그 결과에 따르면, 충동성의 대략 절반 혹은 그 이상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충동성 측면에서 개인차를 보인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충동성의 모든 것이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머지는 후천적 경험과 학습에 의해 결정됩니다.
충동성과 고통감내력이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유전과 환경의 영향은 대략 비슷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고통감내력 측면에서 개인차를 나타냅니다. 물론 그 차이가 평생 동안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유전만큼이나 경험도 중요합니다. 특히 고통을 견디는 것과 관련된 보상과 처벌 경험이 중요하지요. 보상과 처벌의 의미는 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긍정적 느낌을 주는 무언가는 보상이고, 부정적 느낌을 주는 무언가는 처벌입니다.
다양한 동물실험을 통해 중요한 학습의 원리를 밝혀낸 심리학자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에 따르면, 어떤 행동에 보상이 주어지면 그 행동의 빈도가 증가하고, 처벌이 주어지면 빈도가 감소합니다. 간단해 보이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고통감내력에도 적용됩니다. 고통을 견디는 행동이 보상을 받으면 고통감내력은 증가합니다. 반대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처벌을 받으면 고통감내력은 감소하겠지요.
비교적 낮은 수준의 고통감내력을 타고난 일란성 쌍생아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두 아기는 서로 다른 가정으로 입양됩니다.
K의 부모는 도시에 사는 중산층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예의범절을 중시했습니다. 이들은 K가 짜증이나 분노,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을 경험할 때 이를 적절히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K에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K를 위한 훈련을 시작합니다. K가 부정적 감정을 적절히 견디지 않고 충동적이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 지정된 장소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했고, 반대로 일정 시간 동안 부정적 감정을 견디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조절하거나 표현하면 다양한 보상을 주었던 것이지요.
물론 보상과 처벌에 앞서 부정적 감정을 견디면서 조절하는 방법이나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함께 연습을 해 보았지요. 효과는 긍정적이었습니다. 아이는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단계적으로 배워 나갔고, 나중에는 별다른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감정을 견디며 만족스러워했지요.
L은 사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L의 부모 또한 자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L의 기본적인 성향과 그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들은 매우 온화하고 포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L이 자신의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에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으며 그대로 두었습니다.
사실 그대로 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행동을 강화하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분출하는 행동을 하면,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주었던 것이지요. 당연하게도 L의 행동은 시간이 흘러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적절히 견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L은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 감정을 견디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지요.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통감내력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습니다. 다만 전체 인생을 놓고 본다면 성인기보다는 어린 시절이 좀 더 중요합니다. 이 시기의 학습 경험은 다른 시기보다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지요.
미국 메릴랜드 대학과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연구팀은 277명의 청소년을 4년 동안 추적하면서 그들의 고통감내력과 문제행동 간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아이들의 고통감내력 수준은 연구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으며, 고통감내력 수준이 낮을 수록 문제행동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지요.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연구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고통감내력 수준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큰 변화없이 유지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고통감내력은 시간적으로 안정적인 특성이며, 청소년기에도 비교적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더 이른 시기에 기본적인 고통감내력 수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현재 고통감내력 수준은 어린 시절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