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 Apr 18. 2024

21. 고통을 견디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

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기

고통을 잘 견디기 위해서는 고통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서 스트레스에 대해 공부하면서 고통이 어떻게 유발되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고통의 역학(dynamics)에 대해 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 고통은 변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가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하지요. 다른 추가적인 자극이 없다고 가정할 때, 하나의 자극에 의해 유발된 고통은 일정 수준까지 증가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감소합니다.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자극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고통은 계속 증가할 겁니다. 그러다 자극이 사라지면 고통이 감소하는데, 즉각적으로 감소하지는 않고 일정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감소합니다. 이 시간 동안에는 계속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그 강도는 점차 약해지고, 결국에는 평소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그 자체로 불쾌하고 힘든 경험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통스러운 과제를 수행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과제를 시작하면 고통 수준은 점점 증가할 겁니다. 과제를 지속하는 동안에는 고통이 계속 증가하겠지요. 이때 우리는 견딜 수 있는, 혹은 견디고자 하는 수준까지 고통을 참다가 과제를 포기합니다. 


그러면 일단 고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바로 감소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이 감소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이때 이미 유발된 고통을 견디기 힘든 경우, 우리는 빠르게 고통을 줄이는 수단을 동원할 겁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할지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요. 어떤 수단이든 효과가 좋다면 고통을 빠르게 줄여줄 것입니다. 이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사람들과 만나 함께 토론하면서 일하는 것을 굉장히 괴로워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에게 회의는 고통스러운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시작하면 고통이 증가하겠지요. 하지만 생계가 걸린 일이니 참고 계속합니다. 그러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포기를 할 겁니다. “제가 오늘 아버님 기일인 것을 깜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회의장을 나오는 것이지요. 


회의장을 나왔다고 해서 고통이 바로 가라앉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를 나와도 괴로운 상태는 이어집니다. 조금 약해졌을 뿐이지요. 그 상태를 견디기 싫었던 그는 평소 즐겨 찾는 조용한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십니다. 술을 쭉 들이키자 몸이 이완되고 고통도 줄어듭니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예측의 제왕답게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해서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굴려 봅니다. 어떻게 하면 회의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함께 사는 친형이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불치병에 걸려 자신을 애타게 찾는다고 할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갑자기 상을 당하셨는데 도울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보다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놀랍니다. 그렇게 그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회의를 피했지요. 고통을 회피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고통을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하나는 고통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이나 상황, 과제 등을 미리 회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편의상 ‘회피행동’이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고통이 유발되고 있을 때 고통의 원천이 되는 자극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과제를 수행하다가 그만두는 것, 즉 포기하는 행위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도피행동’이라 이름 붙이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이미 유발된 고통을 특정한 방법을 이용해 빠르게 완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완화행동’이라 부르겠습니다. 결국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이나 과제를 미리 회피하지 않는 것, 고통스러운 사건이나 상황으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것, 고통이 이미 유발되었을 때 빠르게 완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숫자 싫어...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활동 중 가장 고통스러운 과제로 수학 공부를 꼽은 한 학생을 생각해 봅시다. 이 학생의 고통감내력을 증진하는 좋은 방법은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일단 수학 공부를 시작하게 하는 겁니다. 회피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딴 짓을 하고 있다면, 일단 데려다가 책상 앞에 앉히고 수학책을 펴도록 하는 겁니다. 


둘째로 수학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고통을 견디며 과제를 지속하게 합니다. 도피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잡아둘 수는 없겠지요. 고통이 너무 심해지면 그것은 그것 대로 문제가 됩니다. 저는 어머니를 어머니로 부르지 않겠습니다, 라는 눈빛을 보이며 정신줄을 놓아갈 때까지 잡아 두어서는 안되겠지요. 


물론 적정선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꽤나 까다롭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지요.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간단히 말하면 ‘제 정신’은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수준 말입니다. 고통에 짓눌려 이성을 잃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아무튼 그 수준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빠져 나오면 고통 수준이 꽤 높을 겁니다. 


마지막 세번째 작업은 그 고통을 빠르게 완화하지 않고 그대로 견디도록 하는 것입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음식을 먹거나 게임을 하거나 웹소설을 보거나 웹툰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해 왔다면, 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고통을 견디는 훈련의 골자입니다. 




어떠십니까? 할 만해 보이시나요? 그냥 이 글을 닫고 싶으신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이 훈련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과 정 반대를 향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고통을 회피하거나 줄이는 데 익숙합니다. 우리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진 면도 있지요. 


우리는 회피의 대가입니다. 시험공부는 내일 하는 것이고, 운동은 내년에 하는 것이며, 싫은 사람은 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우리는 도피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새로 어떤 일을 배우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쉽게 포기합니다. 다이어트는 그만 두려고 시작하는 것이지요. 분홍빛 같던 연애 생활에 갈등이 하나 둘 생기면서 불편해지면 우리는 그 관계를 곧 포기합니다. 


고통완화 또한 우리의 주종목이지요.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한 두개 이상의 방법을 갖추고 있지요. 우리에게 일시적 위안과 만족을 주는 다양한 물건이나 활동이 얼마나 큰 시장을 이루고 있는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큰 문제에 빠져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통회피를 그만 두고 삶의 고통을 오롯이 견뎌내는 고행의 길을 갈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사실 고통을 견디는 것과 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고통을 견딜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그 외의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고통을 피하며 살아도 괜찮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요리조리 고통을 피하면서도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고 있지 않다면,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굳이 연습할 필요가 없겠지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좀 더 강했으면 하는 분들만 연습을 시작하면 됩니다. 물론 무작정 고통에 직면하고, 도망치지 않고, 완화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연습을 오래 지속하기 어렵겠지요. 저라도 그만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여러분이 좀 더 수월하게, 점진적으로, 너무 고통받지 않으면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 방법을 단계적으로 따라오신다면 여러분은 전보다 고통을 더 잘 견디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원하는 삶에도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지요. 

이전 20화 20. 고통감내력은 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