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고통감내력 수준이 어린 시절에 결정된다면, 청소년기나 성인기의 우리는 그저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물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통감내력의 절반 정도만 유전에 의해 결정됩니다. 어린 시절의 훈련 경험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고통감내력을 증진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해 왔습니다. 이들은 고통감내력을 적당한 수준까지 높이면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감소할 것이라고 믿었지요.
미국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 리처드 브라운(Richard Brown)은 브라운 대학에 재직할 당시부터 꾸준히 고통감내력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는 특히 니코틴 사용장애에 관심이 많았지요.
과도한 흡연은 만병의 근원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흡연은 우리 몸에 해롭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왔지요. 다양한 광고와 정책, 금연 프로그램을 열심히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 흡연자가 많이 줄었지요.
그런데 연구를 지속해 보니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 중 상당 수가 다시 흡연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운 연구팀은 다시 흡연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점을 연구했습니다.
브라운 교수가 특별히 주목한 특성은 바로 고통감내력이었지요. 고통감내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연자들은 금연에 성공한 후 다시 흡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고통감내력이 낮은 금연자들은 금연에 성공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흡연을 하기 시작했지요. 고통감내력이 낮은 사람들은 일상의 다양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대응책은 흡연이었구요.
이를 확인한 브라운 연구팀은 흡연자들의 고통감내력 수준을 증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된 프로그램의 효과는 여러 차례의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지요. 연구 결과, 브라운 연구팀의 고통감내력 증진 프로그램은 흡연자들의 고통감내력을 성공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랫동안 금연에 성공했지요.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연구팀에서 고통감내력 증진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마약중독 환자나 진통제 의존 환자를 위한 프로그램, 섭식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었지요. 각 프로그램의 효과성은 달랐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참여자의 고통감내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정한 훈련을 거치면 성인의 고통감내력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지요.
이쯤 되면 프로그램의 내용이 궁금해질 겁니다. 대체 어떤 프로그램이길래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것일까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금연에도 성공하고, 알코올 의존 문제도 해결하고, 심지어 살도 뺄 수 있는 것일까요? 공부하다가 틈만 보이면 도망치는 아들을 꼼짝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공부를 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궁금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프로그램의 내용을 열심히 살펴 보았지요. 그랬더니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통에 노출시킨 뒤 그대로 견뎌보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었지요.
어떠신가요? 갑자기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지는 않나요? 고통을 느끼게 한다니, 무슨 고문인가요,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문은 아니지만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딜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미리 알려주고 연습하지요. 연습을 충분히 한 뒤에는 적당한 수준의 고통에 노출시킵니다. 그리고 난 후 회피하지 않고 가능한 오래 버티도록 하는 것이지요.
M은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체중이 늘었지요. 나중에는 과도한 비만 상태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갑자기 늘어난 체중 때문에 무릎 관절에 문제가 생겼고, 호흡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밤새 코를 골기도 했지요. 수면 도중에 무호흡 증상이 나타나 위험한 상태에 이른 적도 한 두 번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뇨병, 소화기 질환까지 앓게 되어 몸 상태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지만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을 처방 받고 간단한 식단 안내와 운동 권유를 들었을 뿐이었지요. 처음에는 안내에 따라 식단을 조절해 보고 운동도 했지만, 꾸준하게 유지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한동안 계획대로 식사를 조절하다가도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식을 하곤 했지요.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정신이 들면 이미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의욕을 잃어갈 때 즈음 M은 고통감내력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에서 그는 그의 폭식 행동이 정서적 고통과 밀접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지요. 정서적 고통을 빠르게 줄이기 위해 폭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실제로 그는 기분이 나쁠 때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M은 프로그램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부정적 감정을 알아차리고 적절히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요.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고 조절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프로그램 진행자는 M이 최근에 경험했던 불쾌한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겠는지 물었습니다. M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요. 최근에 엄마와 말다툼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도록 권했습니다. M은 그대로 따랐고, 점점 그때의 불쾌한 감정이 다시 유발되는 것을 느꼈지요. 그러자 M의 마음 속에서 음식을 먹고 싶은 충동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M은 당황했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의 안내를 따르면서 자신의 충동을 말로 표현했지요. 진행자는 그럴 수 있다고 안심시킨 뒤 이전에 배운 기술로 감정을 조절해 보라고 부드럽게 권합니다. M은 그대로 따랐지요. 불쾌한 감정이 금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긴장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초조한 느낌도 다소 줄어들었지요.
진행자는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보라고 권합니다. 불쾌한 느낌이 몸의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그 느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도록 권했지요. M은 그대로 따랐습니다. 불쾌한 감정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는 괴롭지 않다고 느끼면서 그 상태에 머물렀지요.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놀랍게도 불쾌한 감정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저 느끼면서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불쾌한 감정은 어느새 약해져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M은 놀라서 진행자를 바라보았지요. “선생님, 이제 괴롭지가 않네요. 이게 무슨 일이죠?” M은 이 경험이 몹시 놀라웠고, 흥미로웠습니다.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꼈지요. 폭식을 하지 않고도 불쾌한 감정을 이겨냈으니까요. M은 자신의 고통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감내력을 증진하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정서적 고통을 조절하는 기술을 배운 뒤, 고통을 직접 견뎌보는 것이지요.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혼자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다양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진행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고통을 견디는 행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