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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pr 19. 2024

22. 감내영역: 견뎌도 괜찮을 때에만 견뎌야 합니다

1988년 미국 애리조나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는 울음이 많았지요.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울어 대기도 했습니다. 성대에 결절이 생길 정도였지요. 어쩌면 외부 자극에 예민하고 위협을 잘 느끼는 성향을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어려서부터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주변을 통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울면서 목청을 단련한 탓인지 목소리도 크고 존재감이 강했지요.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늘 불안과 싸우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8살 즈음되었을 때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지요. 구체적으로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시작되자 그녀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고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정신이 어지럽고 혼미해지면서 이곳에 불이 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있으면 불에 타서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녀는 집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지요.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그 집으로 달려와 딸을 데려갔습니다. 사색이 된 그녀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지요. 


그 이후로 그녀는 친구의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의 집에서 느꼈던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그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경험했지요. 결국 그녀는 전문 심리치료 기관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치료를 받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증상이 공황장애(panic disorder)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오랜 치료와 개인적인 노력 덕분에 점점 나아졌지요. 연기라는 행위가 자신의 증상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 후로는 본격적으로 연기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2016년에는 『라라랜드』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주인공 미아 돌런 역을 열연했던 엠마 스톤(Emma Stone)입니다.



Emma Stone by Brie Larson



엠마 스톤이 어린 시절 친구의 집에서 경험했던 극심한 공포를 공황발작(panic attack)이라 부릅니다. 사람마다 증상을 조금씩 달리 하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임박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과도한 각성을 경험하지요. 


두 증상은 서로 밀접합니다. 우리는 앞서 우리의 몸에 어떤 위협이 있을 때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공부했습니다. 그 위협 중 가장 강렬한 위협은 바로 임박한 죽음을 시사하는 위협이겠지요. 이러한 위협을 감지하면 우리의 몸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됩니다. 특히 각성 수준이 매우 높아지지요. 


각성(arousal)이란 간단히 말해 깨어서 기민하게 경계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죽음의 위협이 임박했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빠르게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한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각성 수준을 높이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각성 수준이 높아지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지면서 싸우거나 도망치기에 적절한 신체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지요. 단지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뿐입니다. 마치 엠마 스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대니얼 시겔(Daniel Siegel)은 각성 수준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각성 수준이 너무 낮을 경우 사고력이 저하되고 정서 반응도 무디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심하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지요. 


반대로 각성 수준이 너무 높으면, 침투적이고 반복적인 생각이 많아지고 사고의 폭이 매우 좁아집니다. 과도하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경향도 강해지고요. 온몸을 긴장한 채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초조하고 긴장된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지요. 


시겔은 이렇게 과도하게 각성되어 있거나 혹은 각성 수준이 너무 낮은 경우, 경험을 적절히 파악하고 통합해서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어렵다고 제안합니다. 우리가 적절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중간 범위’에 머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시겔은 각성 수준이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중간 영역을 감내영역(window of tolerance)이라 명명했습니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각성 수준을 감내영역(window of tolerance)이라 부릅니다.



감내영역은 우리가 최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각성 범위를 말합니다. 우리의 각성 수준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변할 수 있습니다. 위협을 지각했을 때에는 적절한 방어나 싸움, 도피를 위해 각성 수준이 높아집니다. 우리에게 큰 이익이나 만족감을 안겨줄 만한 어떤 대상을 발견했을 때 그 대상을 획득하기 위해 각성 수준이 높아질 수도 있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각성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판단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 쉬워지고, 그에 따라 부적절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우리가 고통을 견디는 행동을 연습할 때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은 각성 수준을 증가시킵니다. 우리가 고통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지요. 우리가 고통을 견디는 연습을 할 때, 마찬가지로 각성 수준이 높아질 겁니다. 우리의 목표는 감내영역 안에 머무르면서 훈련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감내영역 안에 머무르면서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의 감내영역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감내영역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실 감내영역은 이론적인 개념일 뿐 실체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측정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요. 다만 각자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면서 반복작업을 통해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감내영역을 파악하는 첫 단계는 하단 경계를 찾는 겁니다.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각성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잠이 들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멍하고 주변 자극에 원활하게 반응하는 것이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몸이 무겁고 기력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이지요. 지루한 수업을 들으면서 밀려오는 졸음을 간신히 몰아내는 그런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몸이 무겁고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떠오르는 상태를 잘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그 상태가 바로 지나치게 각성 수준이 낮은 상태입니다. 


다음으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스트레칭을 하면서 졸음을 몰아내고 의식이 점점 더 맑아지는 그 순간을 말입니다. 그 지점이 바로 감내영역의 하단입니다. 


다음으로는 감내영역의 상단을 찾아봅시다. 감내영역의 상단을 찾는 좋은 방법은 부정적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했던 상황을 추적해 보는 것입니다. 


분노일 수도 있고, 공포일 수도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짜증이나 초조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 잘 떠올려보십시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면서 크게 흥분했나요? 평소와 달리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선택할 수 있는 행동도 크게 줄어들었나요? 


예컨대 상대와 싸우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방식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나요? 주변 자극에 상당히 예민해져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 상태가 바로 과도하게 각성 수준이 높아진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을 잘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감내영역의 상단은 과도한 각성 상태에 들어가기 직전, 혹은 과각성 상태에서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다시 평소의 판단력과 정서적 안정상태로 들어가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뚜껑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시점인 것이지요. 



찌개를 잘 끓이려면 열을 '적당히' 가해야 합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닐 수 있지만, 이해를 위해서 찌개를 끓이는 것을 예로 들어보지요. 우리의 목적은 냄비를 이용해 찌개를 끓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히 열을 가해야겠지요. 


과소 각성 수준은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찌개 요리가 완성될 수 없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무언가를 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열을 조금씩 더 가하면 이제 냄비 안의 찌개가 조금씩 데워지기 시작합니다. 감내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지요. 그 상태에서 계속 열을 가하면, 감내영역 하단에서 감내영역 상단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때 적절한 수준에서 열을 줄이지 않으면 상단을 돌파하게 됩니다. 찌개가 너무 끓어서 넘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대로 두면 찌개는 찌개대로 망치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방금 전까지 음식이었던 것들’로 더러워지겠지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아름다운 북유럽식 부엌을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번개처럼 날아와 등짝 스매싱을 날리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겠지요. 


위험합니다. 열을 줄여야 합니다. 늦지 않게 불을 줄였다면 찌개는 넘치지 않을 겁니다. 다시 감내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지요. 이렇게 열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감내영역 안에 머물게 되면, 우리가 원하는 찌개를 큰 문제없이 끓여낼 수 있는 겁니다. 




감내영역의 상단과 하단 개념을 이제 이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지점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점수를 매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컨대 각성 점수를 0점부터 5점까지 매기는 것이지요. 


0점은 과소각성 상태를 의미하며, 4점과 5점은 과각성 상태를 의미합니다. 과각성 상태는 편의상 두 단계로 구분하곤 합니다. 4점은 경고단계라 볼 수 있고, 5점은 위기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4점은 현재 상황에서 도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방법을 통해 각성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는 수준을 의미합니다. 4점까지 각성 수준이 상승하는 것은 비교적 흔합니다. 반면 5점은 위기단계로 당장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수준의 각성입니다. 


감내영역은 1점부터 3점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능하면 1점부터 3점 사이의 영역에 머무는 것입니다. 특히 4점이나 5점 단계의 각성 상태에 있다면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서 3점 수준까지 각성을 낮춰야 하는 것이지요. 



나의 각성 수준에 점수를 매기는 습관은 좋은 습관입니다.



간단한 원리이지만 늘 그렇듯 적용은 쉽지 않습니다. 일단 감내영역의 특성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감내영역이 넓어서 웬만한 자극이나 스트레스원으로는 과각성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1점에서 3점 사이의 영역이 매우 넓은 것이지요. 각성 수준이 상승하는 속도도 매우 느릴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감내영역이 상대적으로 좁고 각성 수준이 상승하는 속도 또한 빨라서 툭하면 과각성 영역으로 들어가는 분도 있는 것이지요. 전자에 속하는 분은 감내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수월하겠지만, 후자에 속하는 분은 몹시 어려울 겁니다. 


감내영역 안에 머물도록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 기술 측면에서도 개인차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해서 자신의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각성 수준을 높이거나 낮추는 방법을 전혀 모를 수 있는 것이지요. 


다양한 기술로 자신의 각성 수준을 조절할 수 있는 분이라면 감내영역 안에 머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 분이라면 다음에 소개할 다양한 각성조절 방법을 공부하지 않고 그대로 고통감내 훈련 부분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은 분은 다음에 소개될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훈련하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각성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는 다양한 방법을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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