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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Apr 22. 2024

23. 각성조절의 기술

우리는 다양한 각성조절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여 사용하곤 합니다. 지나치게 흥분하여 초조함을 느낄 때, 너무 긴장해서 몸이 덜덜 떨릴 때 했던 행동을 기억해 보기 바랍니다. 어떤 행동을 했었나요?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또 누군가는 술을 마셨을 겁니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매달리며 너무 불안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면서 잔잔한 음악을 듣기도 하지요. 천천히 호흡하면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하고요. 이 모든 방법이 바로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효과성이나 적응성 측면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지요. 적은 비용으로 빠른 효과를 내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도 있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성도 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방법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함께 훈련할 방법은 여러 연구들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된 적응적인 각성조절 기술입니다.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전혀 해가 되지 않고, 심지어 돈도 들지 않는 방법이지요. 약간 사기꾼의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자 그럼 정말 그런 방법이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하지요. 


효과적인 각성조절 기술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에서 각성 수준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각성조절을 담당하는 주요 부위는 뇌간(brainstem)입니다. 



뇌간은 진화적으로 가장 오래된 구조이기도 합니다.



뇌간은 좌우 대뇌반구와 소뇌를 제외한 뇌의 가운데 부위로 줄기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뇌간은 다시 중뇌(midbrain)와 뇌교(pons), 연수(medulla)로 구분할 수 있는데, 중뇌와 뇌교, 연수를 잇는 길쭉한 형태의 신경세포 집합을 망상체(reticular formation)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망상체가 각성 수준 조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부위의 신경세포들은 뇌의 여러 영역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 데 상당히 적합합니다. 같은 이유로 이 부위가 손상되면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지요. 


망상체는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다른 영역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각성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감각 정보를 통해 파악한 어떤 대상이 위협적으로 지각되었다면 망상체에 그 신호가 전달되고, 망상체는 뇌의 다양한 영역에 신호를 보내 각성 수준을 높입니다. 


제시된 흐름을 보고 있자면 각성 수준을 조절하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를 겁니다. 그렇습니다. ‘각성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되겠지요. 지금은 아무런 위협도 없고 평온하다고 지각한다면 각성 수준은 내려갈 겁니다. 반대로 의식을 모아 처리해야 할 어떤 일이 있다고 판단하면 각성 수준이 올라가겠지요. 


실제로 이 원리는 각성 수준 조절에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수시로 강한 위협을 지각하는 불안장애 환자들에게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실시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인지치료는 간단히 말해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치료입니다. 어떤 대상을 위협적으로 지각해서 문제가 된다면, 그 대상이 정말 위협적인지 따져보도록 하는 것이지요. 



자주 각성되는 사람들은 다양한 사건을 위협적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장애 환자들은 어떤 대상을 실제보다 더 위협적인 것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이들의 각성 수준은 쉽게 높아집니다. 이들에게 인지치료를 실시해서 대상을 현실적으로 지각하도록 돕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이들의 각성 수준은 전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이는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지요.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각성 수준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앞서 과도한 각성 상태에서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때문에 지각이나 판단을 바꾸기 위해서는 각성 수준이 지나치게 높지 않은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꽤나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작업이지요. 그래서 혼자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알려드릴 방법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합니다. 앞서 각성 수준이 증가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외부 환경에 보다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자동시스템이지요. 특히 뇌간에 포함되어 있는 '연수'가 이를 담당합니다. 


연수는 우리의 몸이 적절하게 환경에 반응하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자동화된 신경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동화 시스템입니다. 우리가 딱히 ‘심장아 뛰어라’ 할 필요가 없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일일이 조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연수가 관여하는 주요 생명기능 중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이지요. 


그렇습니다. 호흡입니다. 호흡은 자동으로 작동하지만,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조절하면 바뀌기도 합니다. 물론 숨을 들이쉬지 않는다거나 내쉬지 않는 식의 극단적인 조절은 불가능하지요. 단 들숨과 날숨의 양과 길이는 조절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으로 알려진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응용과학부 교수 크리스토퍼 델 네그로(Christopher Del Negro)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리드미컬한 행동을 주로 연구합니다. 걷기나 달리기, 수영하기, 씹기, 호흡 등이 여기에 포함되지요. 그의 연구팀은 『네이처 리뷰(Nature Review)』라는 저명한 학술지에 ‘호흡은 중요하다(Breathing matters)’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델 네그로 교수



이 논문에서는 호흡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관여하는 신경학적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조정되는 과정과 관련 뇌 영역을 아주 상세하게 제시했지요. 뿐만 아니라 호흡과 각성 수준, 정서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빠른 호흡은 높은 각성 수준과 관련이 있고, 느린 호흡은 낮은 각성 수준과 관련이 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호흡과 각성 수준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지요. 그렇습니다. 각성 수준이 높아지면 호흡이 빨라지지만, 호흡이 빨라지면 각성 수준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반대의 과정도 가능하겠지요. 우리가 호흡을 천천히 깊게 하면 각성 수준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잘 이용하면 우리의 각성 수준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구체적인 기법들을 통해 우리의 호흡을 이용하는 기술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관련된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된 다른 질문도 가능하니,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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