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며 위안을 얻는 요즘,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다. 뭔가 봤던 것을 또 보는 느낌이랄까. 분명 영상은 달라졌는데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욕구, 갈망 같은 것은 변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마치 옷만 바꿔 입은 친구 녀석이랑 같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활동을 하는 것 같달까. 재미는 있지만 나의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은 묘한 감각에 가끔 소름이 끼친다.
'비슷하지만 다른' 콘텐츠를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나는 AI 알고리즘을 좋아한다. 고맙기까지 하다.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알아서 척척 가져다 주니 똑똑한 댕댕이를 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아껴준다'는 측면에서 똑똑한 댕댕이를 환영한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댕댕이가 척척 가져다주는 원리에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AI는 기존의 정보들을 학습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예측을 한다. 가령 A라는 콘텐츠를 자주 보던 사람들은 B라는 콘텐츠도 즐겨 보았다는 자료가 있었다면, 그 내용을 학습해서 A를 보는 사람들에게 B를 추천해 주는 식이다.
이러한 방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을 수 있다. 사실 이 방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으로 주어지는 정보에만 의존할 때 발생한다.
최근 AI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인간의 심리, 특히 정신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information cocoon'이라는 용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직역하면 '정보 누에고치'인데, 말 그대로 누에고치처럼 꽉 막힌 정보체계를 구축하는 현상을 포착하는 개념이다.
이들에 따르면, AI 알고리즘의 추천 정보에만 의존할 경우 정보 누에고치 현상이 강화된다고 한다. 특정한 가치관과 세계관,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 종교적 성향 등이 점점 더 강해지고, 새로운 관점이나 정보에 대한 수용성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신경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신경세포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새롭게 연결하거나 기존의 연결을 끊어낸다. 간단히 말해 필요하면 새로 길을 내고, 필요 없으면 길을 끊는 식이다. 많이 사용하는 길은 더 튼튼해지고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 또한 빨라진다. 사용하지 않는 길은 점점 약해지다가 결국은 끊어지고 만다.
인간의 뇌가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유는, 처한 환경에 맞게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유연성과 수용성을 키워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받아들여 꼼꼼히 따져보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욕구와 생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난해한 환경에서 과도하게 싸우지 않고 적당히 조화롭게 살려면 사고의 유연성과 수용성이 필요한 것이다.
정보 누에고치에 갇혀 사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조금 위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사고방식이 반복되면 신념이 되고, 신념이 감정의 힘을 얻으면 도그마가 될 수 있다. 너무 겁을 주는 말 같지만, 유사한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의 마음을 편협하게 만들 수 있으며, 편협한 마음은 다양한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AI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똑똑한 댕댕이를 좋아한다. 다만 똑똑한 댕댕이가 물어다 주는 것들만 받아 보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몸을 일으켜 산책도 하고, 서점에 들어가서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말이다.
어쩌면 똑똑한 댕댕이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패턴대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회에 모두 이로운 방식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흥미롭고, 기대가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