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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의 심리학

테토냐 에겐이냐, 그것이 문제인가?

by 심심


출처: 내쪼



1.


인간은 유형을 원한다. 유형, 혹은 타입이란 일정한 행동이나 특성의 집합을 말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활달한 특징의 집합을 우리는 '외향형'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까지 MBTI라는 성격 유형론이 유행했다. 나는 ENFP인데, 너는 뭐니? 라는 식으로 묻는 것은 흔하디 흔한 대화법이 되었다. MBTI가 유행하기 전에는 혈액형 유형론이 있었다.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대범하다는 식의 무시무시한 유형론을 만들어 혈액형만으로 사람들을 놀리곤 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테토-에겐 유형론이 슬금슬금 MBTI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테토-에겐 유형론 다음이 무엇일지는 사실 궁금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왜 이토록 유형론에 집착하는지는 궁금하다.



2.


심리학자들이 유형론을 만든 이유는 인간의 다양성을 그래도 조금은 이해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나누어 보기 위함이었다. 사람은 모두 달라요, 라고 말하는 것보다 A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B유형에 속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렇고 저렇답니다, 라고 정리하면 해볼 만한 것들이 그래도 조금은 늘어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유형론이라는 틀을 가지고 사람을 재단하면 그래도 자신이 조금은 인간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인 것이다.


환상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바이힝거에 따르면, 애초에 인간은 물리적이고 객관적인 세계를 온전하게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한 세계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인간의 작동 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납득 가능한 행동이다.


독일의 작가 페터 한트케는 자신의 저서 '소망 없는 불행'에서 세계 대전 직후에 사람들이 유형, 타입에 집착하는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런 타입으로 묘사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내력에서 해방된 듯 느꼈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타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그렇게 살면서 자신의 진정한 과거, 본질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특정한 타입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자기 감각을 얻고, 다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남루하고 볼품없는 자신을 잊으려 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특정한 유형에 자신을 끼워 넣음으로써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본질로부터 눈을 돌리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면, 유형론 집착을 단순하게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3.


인간은 연기를 할 수 있다. 배우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연기를 할 줄 안다. 좋은 학생 연기를 하고, 좋은 엄마 연기를 하고, 좋은 이웃 연기를 할 줄 아는 것이다. 아무런 고민 없이 해맑고 모든 면에서 우월한 인싸를 연기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추구하고 그런 삶에 만족한다고 연기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인간은 모두 연기를 한다.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특정한 유형을 연기하다 보면, 생각도 달라지고 기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세상 해맑은 사람을 연기하다 보면, 정말 긍정적인 생각을 더 하게 되고, 기분도 업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조형과도 같은 것이다. 개인의 특정한 측면을 활성화하고 강화해서 정말 그런 유형을 닮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바람직하고,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유형을 닮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사실 어떤 유형을 택하고 연기하는 과정은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첫째, 택한 유형이 본연의 모습과 너무너무 많이 동떨어진 경우이다. 가령 기질 상 부정적 경험을 피하는 경향이 강하고 긍정적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은 낮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사회적 관계(긍정경험과 부정경험이 모두 많은)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경우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과 비슷하다. 힘을 가하면 어느 정도 당겨서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지만, 과도하면 어느 순간 끊어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기질이 불변의 특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닌 탓이다.


둘째, 택한 유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세상 밝고, 아무런 문제가 없고, 긍정적이기만 한 어떤 유형을 추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기는 하겠지만,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지적한 인간의 다면성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비인간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페터 한트케는 인간이 특정한 유형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점차 비인간화되어 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유형은 유형일 뿐이다. 인간은 유형을 넘어선다. 유형에 자신을 가두면 가둘수록 본연의 인간다운 모습이 가려지고 만다. 인간다움, 혹은 자연스러운 자기의 모습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괴리감과 공허감,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막연한 감각이 생의 어느 순간 찾아올 것이다.



4.


솔직히 말하면, 우리 주변에는 특정한 유형을 택해서 그 유형을 연기하며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 그만큼 인간은 자신을 특정한 유형으로 인식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통제하기 쉽고, 외로워지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MBTI에 이론을 제공한 칼 융 할아버지를 다시 소환하면, 애초에 융 할아버지가 유형론을 만든 이유는 이렇게 특정 유형으로만 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융 할아버지는 일단 개인의 유형을 밝히고, 그런 유형을 가지고 있기에 무의식에 잠겨있는 특성을 잘 의식해서 발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내향적 사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외향적 사고'와 '감정', '감각', '직관' 기능이 무의식에 잠겨 있으니, 그런 기능들을 적절히 사용하고 발달시켜라, 라고 제안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특성은 나름의 가치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두 소중히 여기면서 가능한 만큼 고르게 발달시켜야 한다. 관건은 각자의 본모습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친절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러한 질문을 반복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본질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어떤 특징이 잘 발달되어 있고, 어떤 특징이 미성숙한 지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다움, 혹은 인간다움의 진실은 잊혀진 것, 가리어진 것, 미성숙한 것들을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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