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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공격의 심리학

by 심심
img_20230824172034_bx8c1t50.webp '고백공격' 짤로 많이 사용되는 주오남의 고백(출처: '마스크걸' 중 한 장면)



얼마 전에 너튜브를 구경하다가 고백공격을 주제로 하는 가벼운 영상을 보았다. 서로 딱히 사랑의 감정이 없는데 '고백하는 척'을 해서 상대를 골탕 먹이는 내용이었다. 재미 삼아 만든 영상이었지만 묘하게 찝찝한 감각이 남아 생각을 다듬어 보기로 했다.



1.


고백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격은 해를 가하는 행위이다. 서로 상반되는 대인관계 행동의 대표 유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공격이 하나의 개념에 담기다니 놀라운 일이다.


어쩌다 사랑의 표현이 공격이 되었을까?


사랑도 공격도 두 사람이 관여되어 있으니, 각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



2.


일단 고백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다. 공격의 개념은 피해를 입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하다. 학자마다 의견을 달리 하기는 하지만, 어떤 행위를 당한 사람이 주관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인식은 대부분 중요하게 고려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고백이 고백을 받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인식되어야 '고백공격'이라는 개념이 성립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누군가에 고백을 받았는데 불쾌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 혹은 사귀고 싶다는 말을 들었는데 불쾌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도 안 되고 불편했다 말하기도 하고,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자기를 넘보는 것이 불쾌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대체로 혐오감이 묻어 있었다.


어쩌다 사랑을 표현하는 누군가를 혐오하게 되었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유일하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행위를 하고 있는데 토사물이나 썩은 음식 같아 보인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비극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진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사랑 개념과 공식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한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개념과 공식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서로 다른 사랑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사랑 개념대로 판단하고 고백을 해도, 상대가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여줄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니까 고백을 받는 사람의 기준에 너무 미달하는 경우에는, '나를 뭘로 보고 이러나'하는 불쾌감, 혐오감 같은 것이 유발될 수도 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면, 그것은 말 그대로 공격이 된다.



3.


이제 고백하는 사람의 입장을 살펴보자. 고백하는 사람은 어쩌다 상대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도록 고백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두 가지 스토리 라인이 있다.


첫 번째는 좋아하는 감정, 사랑하는 감정 자체는 진실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대체로 기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기술이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술, 마음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기술 등을 의미한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내 마음도 모르면서 무슨 사랑을 한다는 말이야'라는 식의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그렇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닿는 지점'에조차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마음을 헤아리는 기술의 개인차는 크다.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감동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일단 던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식으로 감정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게도 기술이 세련될수록 상대가 공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사랑이 아닌 경우이다. 사랑의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상대에 대한 각별한 호감,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이러한 요소가 빠진 경우라 할 수 있다. 딱히 호감도 없고, 친해지고 싶은 욕구도 없고, 상대의 안위에도 관심이 없는데 어쩌다 고백이란 행위를 하게 된 걸까? 여기에 바로 '다른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 많은 영상에서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상대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고,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해 고백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이 다른 무언가를 얻으려는 도구로 사용될 때 상대는 그러한 행위를 공격으로 인식할 수 있다.



4.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두 이야기는 결이 많이 다르다.


첫 번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오해의 영역이다. 인간이기에 갖는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일종의 비극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노력을 통해 풀 수 있다. 고백하는 사람은 기술을 갈고닦고, 받는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면(혹은 다정하게 거절하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인간성을 손상시키는 행위에 대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소중한 행위를 무시하고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상대의 인간성을 손상시키고, 이차적으로 자신의 인간성 또한 갉아먹는다. 인간이란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인간다움을 손상시키는 행위만큼은 주의해야 한다. 인간다움을 포기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사람이 아닌 존재가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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